캄보디아 바탐방주 섬로군 도운트랏 마을 근처에서 전문 요원들이 비탈길을 따라가며 지뢰제거 작업을 시작했다. 비탈길 지뢰제거 작업은 숙련을 필요로 하는데, 한발 한발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 캄보디아는 지뢰 피해가 극심한 나라다. 베트남전과 내전을 잇따라 거치며 곳곳에 뿌려진 지뢰와 불발탄은 민간인들의 목숨을, 발목을 앗아왔다. 2019년 12월까지 지뢰와 불발탄 사상자는 6만4853명에 이를 정도였다. 1993년부터 피해는 크게 줄고 있는데,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캄보디아 정부가 노력한 결과다. 지뢰 피해 대표국에서 지뢰제거 모범국으로 변모한 캄보디아를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이 다녀왔다.
캄보디아 바탐방주 섬로군 도운트랏 마을 근처는 사방이 지뢰밭인 아열대의 국경지대였다. 섬로군 일대는 타이(태국) 국경과 15㎞ 거리밖에 되지 않는, 캄보디아에서도 가장 오지인 지역이다. 한반도 비무장지대(DMZ)와 접경지대 지뢰 문제 해결에 관심을 기울여온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2019년 12월20일 캄보디아의 지뢰제거 경험을 배우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지뢰지대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긴장됐다. 아열대 들판과 숲으로 34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였지만, 긴장은 더위를 무색하게 했다.
경기 북부 떠올리게 하는 지형
캄보디아는 국제적인 지뢰제거 모범 국가다. 섬로군 일대는 캄보디아 정부가 지뢰제거 작업을 수행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지역 주민들의 요청으로 2019년 11월부터 지뢰제거 작업이 시작됐다. 이 지역의 지뢰는
캄보디아의 급진적 좌익 무장세력 크메르루주의 폴 포트 군대와 캄보디아 정부군 사이에 1979년부터 벌어진 내전 중에 주로 매설되었다. 타이와 국경을 이루는 캄보디아 서북부 산림지역을 중심으로 500만발가량의 지뢰가 매설된 것이다. 반군과 정부군의 교전 과정에서 중국제, 러시아제, 미국제 등 지뢰가 국경지대에 광범위하게 뿌려졌다. 대인지뢰가 80~90%, 나머지는 대전차지뢰로 추정된다.
캄보디아 지뢰의 비극은 베트남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트남전 중 미군은 캄보디아 동부지역 곳곳에 대규모 공중폭격을 가했다. 이웃 나라 캄보디아까지 이어진 북베트남군 침투로 호찌민 루트를 차단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베트남전 당시인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엄청난 양의 폭탄이 캄보디아 곳곳에 투하되었다. 이렇게 인도차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캄보디아에 매설된 지뢰와 공중투하 불발탄은 국제사회의 숙제였다.
평야의 초지와 농경지 그리고 구릉성 산지가 있는 지뢰제거 현장은 더위만 아니면 경기 북부와도 흡사한 지형이었다.
이곳은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현장으로 접근하기 위해 먼저 간이상황실에서 브리핑을 들어야 하고, 방탄조끼보다 더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안전모도 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비무장지대인 경기도 연천을 떠올리게 하는 비탈길을 올라갔다. 군데군데 참나무과의 수종들이 어우러진 활엽수림이 있었고 초지가 함께 펼쳐졌다. 여기서 금속탐지기 등 장비를 이용해 지뢰제거반 요원들이 직접 손으로 지뢰를 찾아내는 작업을 한다. 실제 한걸음의 실수가 발목을,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지뢰는 풀숲에 숨듯 박혀 있다. 단 한개의 지뢰라도 놓치면 지뢰제거반과 주민들 모두 위험해진다. 매의 눈으로 땅을 샅샅이 뒤지면서 제거 현장 전체를 훑고 지나가면서 불발탄까지 다 찾아내야 한다.
한국에선 평야보다 비탈이나 산지에서 하는 지뢰제거 작업을 어렵게 여긴다. 접근하기 어렵고 장비를 쓰기 쉽지 않아서다. 그런데 캄보디아 지뢰제거 전문가들은 산지에서도 얼마든지
작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검증된 장비가 적절하게 선택돼 있고, 무엇보다 숙련된 전문 요원들 덕분이다.
이날 지뢰제거반은 현장에서 주로 대인지뢰를 찾아냈다. 풀숲 사이를 격자 형태로 폭 50㎝ 길이 3m가량의 실선을 쳐 가면서 조심스럽게 풀을 잘라내며 이동한다. 그리고 금속탐지기로 일일이 훑어가면서 금속 성분의 지뢰와 뇌관을 확인한다. 제거반은 최대한 집중을 하면서 땅만 보고 조심스럽게 지뢰를 찾아간다. 옆에서 지켜보면 제거반원의 신중한 움직임에 함께 몰입된다. 그들의 발걸음과 손동작은 시종일관 섬세하고 정확했다.
지뢰제거 전문 요원이 풀숲을 헤치며 조심스레 지뢰제거 작업을 하는데 손 움직임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겹겹이 제거 점검, 안전지대 확보
드디어 발견한 것은 크메르루주군이 매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소련제 PMN2 지뢰였다. 살상 위력이 수류탄 하나 정도인 강력한 지뢰다. 수거한 소련제 지뢰는 폭파 장소에서 바로 안전하게 처리했는데, 수류탄을 능가하는 강력한 폭음이 땅을 흔들었다. 진동과 동시에 높이 7m 정도의 연기를 뿜어냈다. 대전차지뢰까지 현장에서 처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근처에 마을이 있거나 불발탄이면 폭발물처리센터로 옮겨서 해체 작업을 한다.
섬로군 도운트랏 마을 인근에서 작업하는
지뢰제거반은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4개월간 천막생활을 하면서 30㏊ 면적의 지뢰를 탐지하고 제거한다. 인건비를 포함해 이 작업의 예산은 6만달러(약 7천만원)다. 6명이 직접 지뢰를 탐지하고 제거하는 요원들인데, 전문가다운 기술과 감각이 느껴졌다. 현장 반장인 쿤 포브 팀장은 “유엔의 지침을 캄보디아에 적용한 캄보디아 지뢰제거 지침에 입각해 모든 지뢰 제거 작업을 진행한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숙련돼 있고 경험이 풍부하다. 들판이든 산지든 지뢰가 있는 곳이면 정확히 탐지하여 제거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지뢰제거 요원의 양성과 교육도 체계적이다. 기본 6개월 이상 캄보디아지뢰제거센터 산하 교육원에서
교육과정을 이수한다. 실제 현장에서 4~10개월 동안 인턴 과정의 보조 요원으로 실전훈련을 거친 뒤 정식 요원으로 투입된다.
1993년 캄보디아 내전이 종식된 뒤 유엔을 중심으로 지뢰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이 구체화되었다. 이런 지원을 계기로 캄보디아 정부는 1995년에 지뢰를 비롯한 불발탄의 제거에 관한 정책을 정비하고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캄보디아지뢰제거지원청(CMAA·Cambodian Mine Action and Victim Assistance Authority)을 만들고 그 산하에 캄보디아지뢰제거센터(CMAC·Cambodian Mine Action Centre)를 설치했다. 캄보디아지뢰제거센터는 산하에 전국 광역별 지뢰제거단을 두고, 전문폭발물처리센터와 교육원 등을 운영한다. 전문기관에서 20년 이상 지뢰 및 불발탄을 제거해온 것이다.
지뢰제거 과정은 이렇다. 우선 캄보디아지뢰제거지원청이 지뢰가 있는지, 위험이 어떤지를 조사하고 제거 여부를 판단한다. 지뢰제거청은 총리 직속(우리나라의 대통령 직속에 해당) 기관으
로 150여명의 중앙정부 공무원이 속해 있는데, 국방부와는 무관한 조직이다. 지뢰제거청이 지뢰제거를 결정하면 집행은 지뢰제거센터가 한다. 캄보디아지뢰제거센터는 직원 1800여명이 일할 만큼 규모가 큰 공공기관이다.
캄보디아지뢰제거센터는 실제 지뢰를 제거하고 평가하며 보고까지 수행한다. 특히 지뢰제거반이 투입돼 현장에서 작업한 이후에도 ‘제거가 제대로 되어 안전한가’
를 겹겹이 평가하는 절차는 주목할 만하다. 캄보디아지뢰제거센터가 1차 안전진단을 내리고, 지뢰제거청은 확인 평가를 한다. 이렇게 정부가 보증한 지뢰안전지대를 확보해가는 것이다.
캄보디아 정부가 집계한 지뢰와 불발탄 사상자는 6만4853명이다. 1979년부터 2019년 12월까지 통계다. 1993년부터 공식적으로 제거한 지뢰는 107만6714발. 지뢰제거 작업의 성과로 최근 피해자가 줄고 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사상자 수가 385명으로 현격히 줄어드는 추세다.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아 캄보디아 정부가 노력한 결과다. 캄보디아지뢰제거지원청의 헹 라타나 단장은 캄보디아의 성과와 한반도의 과제를 이렇게 말했다.
“캄보디아는 지뢰와 불발탄 제거 및 대응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20년 이상 현장에서 활동한 결과다. 유엔을 비롯하여 미국, 영국, 일본 등 여러 국가들의 지원도 있었다. 정부도 내전 이후 부흥을 위해 지뢰와 불발탄 제거를 핵심적 문제로 인식하고 지뢰제거에 나섰다. 한반도의 지뢰와 불발탄 문제는 우리도 알고 있다. 최근 북한도 캄보디아지뢰제거지원청을 찾아왔다. 지속적인 협력을 약속하기도 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한반도 지뢰 문제 해결을 위해 기술과 경험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
캄보디아에서도 특히 인상 깊은 사무실이 있었다. 캄보디아지뢰제거지원청 부서인 지뢰조사 데이터베이스팀이다. 이 부서는 캄보디아의 지뢰와 불발탄에 관한 광범위한 자료를 디지털로 저장한다. 캄보디아 지뢰와 불발탄을 조사한 정보를 지리정보체계(GIS)로 관리하는데, 이는 공간계획에 기반해 체계적으로 지뢰 문제에 대응한다는 의미다. 지뢰는 땅에 묻힌 위험 물질이어서 공간정보 기반의 접근이 핵심이다. 그러나 한국은 국방부는 물론이고 국민 안전 주무부서인
행정안전부도 체계적인 지뢰 자료나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 결과로 군사작전의 효용도 없으면서 방치된 미확인 지뢰지대가 전국에 5만㏊ 이상 된다.
한국은 캄보디아를 포함해 인도차이나반도 국가들의 지뢰와 불발탄 제거에 해마다 30억원 이상을 지원한다. 그런데 정작 국민의 생활 터전 주변에 방치된 지뢰에는 무관심하다. 후방지역과 접경지역 곳곳에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지뢰지대가 널려 있는데도 그렇다. 지금껏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지뢰 실태를 제대로 조사한 적도 없다. 비무장지대의 지뢰가 100만발 혹은 200만발가량 된다는 출처도 불분명한 이야기만 떠돈다. 이렇게 정부가 손 놓은 사이에 지뢰 피해자는 늘어가 지금껏 1천여명으로 추산된다. 2005년부터 지뢰 피해자의 실태에 대해서 평화나눔회(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등 민간단체에서 지속적인 조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수거한 지뢰는 현장의 폭파 장소에서 안전하게 처리된다. 근처에 마을이 있거나 하면 폭발물처리센터로 옮겨 해체 작업도 한다.
“지뢰제거는 군사조직 일이 아니다”
한국은 국방부 주도로 2005년부터 후방지역 지뢰를 제거했다. 그러나 완전히 제거했다는 자신이 없어 지금도 제거 현장 곳곳에 ‘출입금지 지뢰위험’ 또는 ‘위험 과거 지뢰지대’라는 안내판과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이런 곳이 서울 강남의 우면산부터 부산의 해운대 장산과 태종대 중리산, 대구의 최정산 등 전국에 36곳이나 된다. 조재국 평화나눔회 이사장은 캄보디아 사례의 교훈을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지뢰 문제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자 오해는 군대만이 지뢰제거를 할 수 있다거나 군이 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국제사회에서 지뢰제거는 인도주의 단체나 민간 전문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지뢰제거는 군사조직이 하는 일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 모두 그렇다. 이런 점에서 캄보디아 정부의 지뢰제거와 대응은 한반도 지뢰 문제의 구체적인 해법으로 보인다.”
캄보디아 사례는 한국에 여러 시사점을 준다. 지뢰제거 문제는 정부가 정책의지를 갖고 지뢰대책 전담조직을 만들면 해결 가능하고, 지뢰가 무기라는 이유로 국방부만 쳐다볼 일이 아니란 것이다. 국방부는 전시에 지뢰를 매설하지만, 전후에 지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민간 전문가들이다. 한국도 국민 안전 차원에서 지뢰 문제에 접근하고, 국방부 이외의 행정조직에서 지뢰제거를 전담해야 한다. 정책과 법을 만들고 총리실 직속이나 행안부 소속의 전담조직과 전문기구를 만들면 해결할 수 있다.
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