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법관대표회의 최기상 전 의장(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이 지난해 3월8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최기상(51) 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가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며 정치권 진출을 공식화했다. 법조계를 중심으로 전·현직 판사의 정치권행이 판결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사법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를 심화시킨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더불어민주당은 4·15 총선을 앞두고 최 전 부장판사를 ‘인재 20호’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최 전 부장판사는 기자회견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가 드러난 지 3년이다. 그동안 법원 안팎으로 수많은 개혁 논의가 있었지만 실제로 바뀐 것은 없었다. 법 개정에 앞장서야 할 국회는 나서지 않고 법원은 주저하고 있다”며 “생살을 찢어내는 고통 없이는 개혁을 이룰 수 없다. 인권 최우선 수사와 책임 있는 재판을 통해 국민들께서 ‘법이 있어 참 다행이다’라고 느끼는 사법제도를 꼭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최 전 부장판사는 1999년 임용돼 광주지법과 서울중앙지법 등에서 근무했다. 2015년 우리법연구회 회장과 2018년 2월 전국 각급 판사 대표들이 모인 회의체 기구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의장을 지냈다.
이날 민주당의 1차 인재 영입을 끝으로 최기상, 이수진, 이탄희, 장동혁 등 전·현직 판사의 정치권 진출도 마무리된 모양새다. 그러나 현직 판사의 정치권행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판결의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적어도 법원을 퇴직하고 나서 일정 기간 ‘냉각기’를 가져야 하는데 일부가 ‘현직 판사’라는 프리미엄을 갖고 정치권으로 직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시각이다. 지난해 2월 퇴직한 이탄희전 판사를 제외하고 모두 사표 제출 뒤 바로 입당 절차를 밟았다. 최 전 부장판사는 서울북부지법 민사합의부에 소속돼 일하다 사표를 내고 지난달 13일 자로 법원을 퇴직했다. 장동혁 전 부장판사도 사표를 내자마자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한 판사는 “시민의 입장에선 과거 판결의 공정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불신은 결국 남아있는 3천여명 판사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을 말릴 수는 없지만 어제까지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는 판사였고, 오늘은 특정 정당 소속 정당인이라면 국민들에게 그 연속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 국민들이 어떻게 판사의 판결을 믿을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 전 부장판사가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의장을 지냈던 만큼 사법농단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전국법관대표회의 활동의 진정성을 퇴색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법관대표회의는 각급 법원 판사회의에서 선출된 판사들이 법관 독립과 사법행정 개혁을 위해 모여 토론하고 의결하는 대의기구다. 최 부장판사 등 정치권에서 뛰어든 전·현직 판사를 설명할 때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주요 이력으로 소개되자, 전국법관대표회의 운영위원 등은 ‘특정 판사의 정치경력으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발표할지를 검토하기도 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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