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부지방법원 전경.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비자 없이 15년 동안 한국에서 일용직 등으로 일하며 미등록 체류한 중국동포에 대해 법원이 “배려가 필요하다”며 선고를 유예했다. 20년가량 한국에 거주하며 생계유지를 위해 성실히 생업에 종사해온 중국동포의 상황을 고려한 이례적인 판결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동부지법 형사2단독 이형주 판사는 공문서위조와 위조공문서 행사,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중국동포 ㄱ(57)씨에게 지난달 29일 형 선고를 유예하는 판결을 했다고 10일 밝혔다. 선고유예는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 일정 기간 형 선고를 미뤘다가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선고를 면해주는 면소 처분을 받았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판결문을 보면, 기술연수 비자(D-3-1)를 받고 2000년 7월 입국한 ㄱ씨는 2004년 체류기간이 만료됐음에도 비자 연장 허가를 받지 않고 2018년까지 국내 건설 현장 등에서 일당 13만원을 받으며 일용직으로 일했다. 이 과정에서 ㄱ씨는 2011년 7월께 친형의 ‘외국국적동포 국내 거소 신고증’에 자신의 사진을 붙여 복사하는 방식으로 위조해 취업하는 데 이용했다. 검찰은 ㄱ씨의 이같은 행위가 공문서위조 등에 해당한다며 ㄱ씨를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재판부는 “ㄱ씨가 국민의 일원이 되는 데 지장이 없도록 배려해야 한다”며 징역 4월의 형 선고를 유예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ㄱ씨가 저지른 범죄는 생계유지를 위한 것이었고 달리 아무런 해악을 초래한바 없어 비난 가능성이 없으며 나아가 20년가량 국내 체류하면서 성실히 생업에 종사해 온 것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판부는 “ㄱ씨가 계속 체류하거나 다시 한국을 찾거나 나아가 국민의 일원이 되는 데 지장이 없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며 선고유예 이유를 밝혔다. 다만 법원은 출입국관리사무소 특별사법경찰관의 신문과 같이 미등록 체류자의 합법화를 위한 여러 정책이 있어 충분히 합법적으로 체류할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ㄱ씨가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무죄를 선고하지는 않았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ㄱ씨는 재판 과정에서 “이혼을 한 뒤 실의에 빠졌다”며 “자진신고하면 한국에 다시 입국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판결에 대해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공문서위조는 선고유예가 잘 안 되는 중범죄인데, 이주민의 구체적 사정을 고려해 양형 사유에 반영한 건 긍정적 판결로 보인다”며 “다만 출입국관리소의 강제퇴거 조처는 법원 판결과는 상관없이 별론으로 이뤄질 수 있으므로 추방의 가능성은 남아 있어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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