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현 작가는 아픈 아버지를 돌보면서도 끝없이 시민으로 자신과 아버지를 해석하려 했다. 부모와 자식의 혈연적 관계를 넘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은 어떻게 가능한지 고민했다. 그는 시민을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지난 1월15일 인터뷰를 위해 조 작가가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했을 때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조기현은 1992년생 작가다. 석달 전에 펴낸 첫 책은 <아빠의 아빠가 됐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35만원짜리 집에 아빠와 둘이 살던 아들이 뭐라도 해보려는 스무살에, 아빠가 덜컥 쓰러져서 가장이 됐다. 병원비를 구하고 보호자 노릇을 하며 나중에 치매까지 온 아빠를 돌봤는데 그 세월이 9년이다. 얼핏 긴병에 효자 난 것처럼 보이는 희귀 서사에 매스컴은 반응했다. 책이 지면에 소개됐고 그와 아버지는 몇군데 방송에 출연했다. 어떤 이는 그의 삶에서 불행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그의 눈에서 효행을 읽고 가나, 그는 그것들이 마땅치가 않았다.
그가 지은 책 제목은 따로 있다. ‘나는 효자가 아닌 시민이다’. 효자라는 말은 봉양의 의무만 남기고 한 존재의 복잡한 감정과 생각은 지운다. 그가 자신의 청춘을 지배한 돌봄에 무너지지 않은 건 천성이 착해서가 아니라 질문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나는 왜 아빠를 신경 쓰지? 아빠가 이렇게 된 게 정말 아빠만의 책임일까? 우리는 희생이나 배제 없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 답을 구하기 위해 온갖 책을 팠고 차츰 아버지를 혈연 넘어 한 사람의 사회적 신체적 약자로 보는 눈을 얻었다. 인생의 짐이 곧 힘이 되고, 가족관계가 시민관계로 확장되는 돌봄의 의미, 그 치열한 사회적 탐색의 결과물이 한권의 책이 됐다.
―책이 나오고 제일 달라진 게 뭔가요?
“이렇게 언론 인터뷰를 하고 제 발언에 누군가 주목하는 거요. 항상 공공기관에서 제가 말하는 것을 듣지도 않고, 의사의 진단 앞에서 최약자가 되어 빌빌거려야 했는데 이제는 의사분들도 연락이 와서 동등한 사람으로서 대화를 하는 거요.”
―의사한테 무슨 연락이 왔어요?
“돌봄의 사회화와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호스피스 의사인데 제 인터뷰를 보고 연락 주셔서 의료인류학 하는 분이랑 셋이 만나서 대화를 해볼 예정이에요.”
―제안을 받으신 거네요.
“네. 병원에서 의사들한테 받는 이질감 같은 게 항상 있었는데 이제는 같은 방향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너무 생경한 경험이죠. 또 ‘서울시 청년불평등 완화 범사회적 대화기구’의 공동위원장을 맡기로 했거든요. 평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회적 위치를 제안받은 건 처음이에요.(웃음)”
―이런 반응이 오는 이유가 뭘까요?
“어쨌든 자신의 얼굴을 걸고 가난과 돌봄에 대해 전면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이런 기특한 청년 하나 있어야지’ 하는 만족감을 주는 것도 있고. 이미 겪은 사람들과 같이 한을 푸는 것? 저도 계속 아닌 척 성숙한 척 해도 한이 남아 있거든요. ‘왜 나야’라는 억울함을 공유하는 얘기에 은근히 공감을 많이 하더라고요.”
건설노동자를 돌보는 시네 키드
아버지는 1961년생 건설노동자였다.
49살에 당뇨로 인한 쇼크로 쓰러졌다. 손에 시멘트 범벅이 된 채였다. 그가 중환자실에 갔을 때 간호사가 물었다. 어머니는 오고 계시나요? 어릴 때 이혼해서 내가 보호자라고 대답했다. 열두살 때부터 따로 살았다. 여동생은 엄마와, 아들은 아빠와. 두 식구가 된 아빠는 아들에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고 밥을 지어주었다.
―책의 첫 문장이 ‘초등학생 때 아버지 어머니는 이혼을 했다’예요. 한번에 주저 없이 썼나요?
“아버지와 단둘이 살기 시작한 순간이잖아요. 아버지의 몫까지 2인분의 삶이 예견된 가정환경이 만들어진 시점? 그래서 그 문장이 바로 나왔어요.”
―학교도 병원처럼 정상가족 중심이고 엄마란 존재를 당연시하니까 불편했겠어요.
“인문계 고등학교 다니다가 고2 때 취업하려고 전기랑 가스 용접 배우는 직업학교로 옮겼어요. 원서 쓰는데 선생님이 ‘너희 어머니 아들 무조건 대학 보내야 된다, 그런 이상한 분 아니지?’ 이러면서 써주는 거예요. 엄마랑 떨어져 산 지 6~7년 돼서 그럴 때 으레 엄마 있는 척하는 연기는 이미 습득이 됐거든요. 담담하게 정상가족인 척했죠.”
조기현은 영화감독과 작가를 꿈꿨다. 대학에는 뜻이 없었다. 학교 공부가 싫었고 학자금 대출 받으며 다닐 자신도 없었다. 미래가 불안할 땐 대학을 나오지 않고 활동하는 류승완 감독이나 장정일 같은 작가를 찾아보며 안도했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네이버 영화’를 들락거리며 영화 정보를 찾아보고 2000편가량의 영화를 본 시네 키드다. 영화가 주는 ‘이야기’의 힘에 빠져들었다. 수업시간엔 “몇번 조기현 일어나서 읽어봐” 하면 하도 더듬더듬 읽어서 “그냥 앉아!” 했을 만큼 활자랑 먼 학생이었던 그가, 영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에 부풀어 글쓰기에 도전했다. 웹소설, 시나리오를 쓰고 드라마시티 공모전에도 냈다. 졸업 후 주말에 상상마당에서 단편영화를 배우던 중 아버지가 쓰러진 것이다.
―스무살에 보호자가 됐어요. 이건 연기할 수 없는 역할인데.
“갑자기 보호자로 호명돼요. 그때부터 사리분별도 해야 하고, 돈도 구해야 하고, 환자의 상태도 계속 체크해야 돼요. 누군가를 보호하고 돌보는 일을 소화 못 하고 헤매는 시기가 1~2년 걸렸죠.”
―중환자실 입원비 보증을 서려면 만 24살 이상이어야 하고, 당시 작가님이 4살이 부족해서 애먹었잖아요. 나이 어린 보호자라서 고통이 더 컸을 거 같아요. 특히 의료 급여 지원받는 과정은 복잡하더라고요.
“아버지가 처음에 쓰러졌을 땐 만성질환으로 당뇨였어요. 근로능력이 없다고 국민연금에서 의사들이 판단을 하고, 구청에서 지원을 하겠다 하면 동사무소에서 지원을 해줘요. 가족이 수입이 많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니까 모멸감이 되게 컸고요. 젊은 놈이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이런 데 와서 가난이나 증명하고 있다고 혼나기 직전 같은.”
―스스로 가난을 증명하고 심사받는 부당함이 꾸준히 문제로 제기돼요. 대안이 있다면요?
“검사 중심의 지원 제도가 바뀌어야죠. 심사할 때 아버지 치매점수가 딱 1점 모자라서 조건이 안 됐어요. 근데 정밀검사를 하려면 몇백만원이 들어요. 그 돈을 쓰지 않고 정밀검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더니 그런 지원 제도는 없대요. 모든 증상이 24시간만 있으면 빤히 알 수 있는데, 굳이 돈을 쓰게 만들잖아요. 당시 아버지 같은 어정쩡한 상태를 다 포함할 수 있는 스펙트럼, 혹은 입증 방법을 만들어야 해요.”
―점차 비혼이나 젊은 자녀가 부모를 돌보게 되는데 사회적 해결책이 뭘까요?
“가족 중심의 복지정책이 문제죠. 문재인 대통령의 치매국가책임제도도 치매 의료나 검사 비용 줄여주고 방문간호사가 환자 집으로 찾아오는 정도예요. 그걸로 해결 안 되는 삶의 위기가 있어요. 환자를 중심으로 하고 가족이 담당하는 걸 기본 전제로 하지 않아야 해요. 지금은 가족이 버리지 않고 적당하게 담당할 수 있는 정도의 책임만 져주는 국가책임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얼마 전 서울대 의과대학 4학년들이 듣는 ‘의료 접근성과 사람 중심성’이라는 수업에 초대됐다. 차상위계층이 의료급여를 받는 과정에서 겪은 사례를 말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기회를 가졌다. “언제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겪었지만 이야기되지 않는 경험”이 곳곳에서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지난 1월15일 은유 작가와 조기현 작가가 인터뷰에 앞서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사진 촬영하는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더 나은 세상, 그게 바로 아빠한테 붙어요”
아버지에게 치매증상이 나타난 건 당뇨병 발병 5년 뒤다. 집 보증금이 반토막이 나고 모아둔 돈은 병원비로 다 사라졌다. 아버지는 술에 의존하고 수도꼭지의 방향을 잊고 자주 길을 잃었다. “아빠를 보면 폭탄이 째깍거리는 듯했다.”
―요즘 일가족 사망 사건이 많아요. 2019년에만 18건, 사망자가 70명인데 원인은 대부분 생활고예요. 그런 기사를 볼 때 어떠세요?
“남 얘기 같지 않죠. 그분들이 이미 몇년 전에 동사무소 다녀왔던 기록이 있다고 나오는데, 공공기관에서는 그냥 자격 요건이 안 된다고만 해서 내쫓잖아요. 저는 이런 것들이 괘씸할지언정 살아서 증언하자,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요. ‘꿈 많던 20대 청년, 치매 걸린 아버지 살해 후 죽어’ 이런 기사가 나갈 걸 생각하면 열불이 나는 거예요.”
―맞아요. 작가님도 ‘아빠가 어서 죽어서 내가 이걸 털어버리고 싶다’고 썼죠. 위악이 위안이 된다면서요. 보통은 생각만 하는데 어떤 경우엔 진짜 선택을 해요. 차이가 뭘까요?
“‘나는 아빠를 죽이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 말은 내뱉었을 때 살아갈 힘도 나오고,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시그널 같은 거였는데 그 말이 (일부 방송에서) 너무 가십거리가 됐어요. 아버지가 치매래요. 질병에 대한 이해도 없고, 제가 일도 못 하고, 도움을 청하는데 받지도 못하고 그 일시적인 공백 상태 동안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해요. 주변 사람들은 말해도 뭐가 고통스러운지 모르고, 의사나 공공기관에서 모멸감을 주는 말들을 듣고, 아버지는 내 말을 안 듣고…. 이게 장기화됐다면 저도 진짜 모르는 일인 거예요. 어쨌든 운 좋게 입증이 되었고, 지원금이 딱 들어왔을 때 그 안도감을 겪지 않았다면 모르죠. 이게 한끗 차이지만 중요하죠. ‘정말 죽여야겠다’가 한 개인이 온전히 하는 내면의 결정만은 아닌 것 같아요.”
―왜 아버지로부터 도망가지 않았나요?
“어찌어찌하다가 남았죠. 아버지에 대한 연민도 있고, 한편으로는 계속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데, 결국 돌아오는 건 아버지라는 개인과 사회구조에 대한 생각이고. 영화 <파이 이야기> 를 볼 때 심장에 뭘 콱 맞은 느낌이었어요. (주인공 파이는 자기를 위협하지만 자기가 돌봐야 하는 호랑이 리처드 덕에 망망대해에서 살아남는다.) 아버지가 두번째 쓰러지고 나서 ‘아, 그게 이거였구나’ 했죠. 아버지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으니까 최소한의 자존을 바닥내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책에도 ‘돌봄이 긍정적인 인간의 지위를 누리게 해준다’고 썼어요. 확 와닿진 않는데.
“제가 산업기능요원으로 공장에서 일할 때나 노동 현장에서는 선택권이라는 게 없어요. 부속품, 기계, 노예가 돼요. ‘힘드냐?’ 물어봐서 힘들다 그러면 ‘뭐 힘들어 새끼야, 나이도 젊은 새끼가’ 하고 욕을 한 바가지씩 해요. 인간 취급을 못 받아요. 근데 어쨌든 보호자로서 모든 걸 선택하고, 판단해요. 인간 주체로서 내가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선 역량이 필요하고, 해결할 때마다 입증하죠. 아버지를 잘 돌봤다, 내가 이 문제를 잘 헤쳐나갔다.”
‘달려드는 저 태양은 피를 말리고/ 모래알처럼 흩어진 눈물의 기도들/ 우 위로해주는 사람 어디 있나/ 예(Yeah) 위로해주는 신은 어디 있나/ 이곳에서 축복이란/ 오래 참는 마음이겠지/ (…)/ 깊어가는 아버지의 한숨/ 이뤄질 수 없는 것들의 삶이여’(이승열 노래 ‘너의 이름’ 중)
조기현이 좋아하는 노래다. ‘이뤄질 수 없는 것들의 삶이여’라는 소절은 너무 좋다고 말하는데 순간 그의 눈빛이 반짝이고 억양은 순해진다. 고백하듯 읊조린다. “물음도 답도 주어지지 않고 사라지는 삶의 순간들, 그 순간들을 부여잡고 질문해보고 답해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진실에 대한 욕구. 그 진실을 캐내고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한 거 같아요.”
―<아빠의 아빠가 됐다>는 책에 대한 책 같기도 해요.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본 책들의 목록.
“제가 생각하는 올바른 삶, 좀 더 나은 세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아빠한테 붙어요. 눈앞에 있는 현실이 해결되지 못하면 저한테는 좋은 세상은 없는 거예요, 위선이 되는 거죠. 아버지 하나를 괴물로 만들어서 좀 더 편한 삶을 살 거냐, 아니면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고민하면서 질문을 계속 던질 거냐. 뭘 읽더라도 아버지로 빠지죠. 이 책은 내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 궁금하고.”
―너무 좋은 독서법이에요. 간절한 질문 없이 보는 책은 다 사라지더라고요. 어쩌면 나 살려고 읽었던 것일 수도 있겠네요.
“사실 소비의 쾌감도 있고(웃음) 책장을 범주화해서 묶어놓는 재미도 있고요.”
그는 <할배의 탄생> <나 홀로 부모를 떠안다> <아들이 부모를 간병한다는 것> 같은 책을 읽고 타인의 삶을 듣고 관계 맺는 방식,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성숙함, 간병하면서 달라지는 관계 등을 배웠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9년간 돌보고 있는 조기현(왼쪽) 작가가 지난 1월16일 경기도 부천의 한 요양병원 앞에서 아버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다. 부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개인의 증언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아버지가 아드님 책을 봤나요?
“나온 건 아는데 보지는 않았죠. 원래 성격 자체가 무뚝뚝하고, 책을 썼다거나 제가 사회적으로 무언가를 성취했다고 해서 감정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치매가 시작돼서 그나마 감정적 교류가 가능했던 거고.”
―아버지가 관심 없을 것을 아니까 좀 편하게 썼겠네요?
“그렇죠.”
―그래도 타인의 삶을 가져다 쓰는 건데 ‘재현의 윤리’는 어떻게 풀었나요?
“사실 너무 오랫동안 아버지 이야기를 부여잡고 있었어요. 책 쓰려고 이미 많은 자료나 아버지와 비슷한 사회적 조건들을 찾아본 상태니까, 아버지를 나태해서 일 안 하다가 가족에게 짐만 지우는 치매환자로 납작하게 쓰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죠. 또 마지막에 화해의 서사가 예정된 글쓰기였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나름 최소화한 것 같아요.”
―개인의 증언이 사회의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서지현 하면 미투, 김지영 하면 젠더, 장피에르 다르덴 감독의 영화 <로제타> 하면 청년 빈곤. 이런 하나의 명사가 하나의 이슈를 설명해주는 것에 연결시켜서 생각했어요. 내 책이 ‘네이트판 글쓰기’ 같은 불행 배틀의 끝장판이 아닌가. 그런 글쓰기가 안 되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어요. 적당하게 표본화시키는 게 아니라 정말 솔직하게 쓰자. 솔직함을 포괄하는 사회적 이야기로 쓰자.”
―그런 노력에서 ‘기특한 젊은이’에 갇히지 않고 효자가 아니라 시민이라는 슬로건이 나온 거네요. 자기 삶의 해석권을 찾아가는 게 좋았어요.
“제가 딸이었으면 규정이 더 많았겠죠. ‘이래서 딸 낳아야 된다’ ‘딸이 필요해’ 이런 얘기를 저한텐 아무도 하지 않았잖아요. 사적 감정의 강요가 없었기 때문에 돌봄을 공적인 영역 안에서 해석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을 수도 있죠.”
―시민을 정의한다면?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 의지를 가진 사람.”
―마지막으로, 보호자가 된 가난한 청년에게 해줄 말이 있을까요?
“단 몇마디 말로 불가능할 것 같아서 책을 썼으니까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고. 우리가 느끼는 같은 점과 다른 점에 대해서 같이 재보면서, 같은 보폭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분노를 성찰로, 고립을 공존으로
가난에 대한 르포르타주 <사당동 더하기 25>에 이런 증언이 나온다. “세상에서 집이 제일 무섭죠. 회사는
에이 관둬버리면 되지만 집은 안 그래요.” 홈은 스위트하지 않다. 평화와 배려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폭력과 희생의 배양지가 되기도 한다. 대개는 가난할수록 전쟁터다.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복지를 ‘집안’에서 해결하려니 그렇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돌봄 공포의 사회에서 그는 “아버지를 물고 뜯으면서” ‘2인분’의 삶을 먼저 살아낸 생존자이자 목격자다.
지난해부터 ‘아버지의 터널’에 빛이 보인다. 아버지는 부천의 한 종합병원에서 비슷한 처지의 동년배와 지내면서 상태가 나아졌다. 그는 청년들과 공유하는 문래동 작업실로 출근한다. 20대 끝에서야 처음 만나는 자유다. 온전한 1인분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뭘 좀 해보려고 한다. 노트북 바탕화면엔 2018년 일가족 사망사건 통계 자료 이미지를 깔아놨다. 잊지 않고 바꿔나가려는 장치다. 분노를 성찰로, 고립을 공존으로 착실히 바꿔낸 청년 예술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녹취 이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