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스틸컷
지난해 봄 갑질 악덕 사업주를 응징하는 근로감독관의 이야기를 그리며 최고 시청률 8.7%를 기록한 문화방송(MBC)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하 조장풍)이 정작 드라마 종영 8개월여가 지나도록 계약직 스태프였던 음악감독 등의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조장풍은 ‘사람을 썼으면 그에 맞는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노동권의 상식을 설파하며 지난해 문화방송 연기대상 대상, 최우수상, 조연상을 휩쓸었다.
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문성남 음악감독은 드라마 조장풍에 쓰일 음악 전체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지난해 4월10일 9천만원에 용역 계약을 맺었다. 16부작으로 방영된 드라마 조장풍에는 문 감독이 창작한 음악이 모두 827곡이나 쓰였다. 특히 문 감독은 드라마 회차에 맞춰 뮤직 큐시트 작성 등의 작업까지 도맡아 했다. 문 감독은 드라마 <파스타>, <의사요한>, <힘쎈여자 도봉순> 등 다수 드라마에서 음악감독을 맡은 베테랑 뮤지션이다.
애초 문 감독에게 작업을 제안한 건 문화방송 본사 소속 정규직 피디(PD)다. 2018년 8월께 드라마 조장풍을 연출한 한 피디가 자체 제작할 거라며 문 감독에게 “작업을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진행 과정에서 외주 제작으로 방향이 바뀌었고, 문 감독은 문화방송이나 외주 제작사가 아니라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오에스티·OST) 제작사 ‘뮤직스토리’와 계약을 맺게 됐다. <한겨레>가 입수한 문 감독의 계약서에는 ‘총 9천만원의 용역비를 드라마 4회차 방영 후 40%, 10회차 방영 후 30%, 방송 종료 후 30%로 나눠 지급한다’고 되어 있다. 문 감독은 이후 작업을 위해 스튜디오 등 시설을 대여하고, 작업을 함께 한 사람들에게 인건비를 선지급했다. 문 감독은 “5천만원 정도가 제작비와 실비로 쓰였다. 하지만 3번에 걸쳐 용역대금을 입금하겠다던 오에스티 제작사는 드라마가 종영한 뒤 2천만원만 한 번 입금했을 뿐, 나머지 금액을 지금까지도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중간 정산이 제대로 안 되자 문 감독은 “계약대로 돈이 지급되지 않으면 드라마 최종회에 음악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문화방송에 통보했다. 이에 문화방송의 제작 피디는 문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문화방송이 지급을 보증하고 책임을 질 테니 방송만 마무리하자”고 설득했다고 한다. 외주 제작사 역시 “오에스티 제작사를 통해 틀림없이 돈을 지급하겠다”며 공문으로 지급을 약속했다. 문 감독은 결국 드라마 종영 때까지 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약은 이행되지 않았다. 문 감독은 자신을 섭외한 문화방송 피디와 제작본부장에게 항의했지만,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또 다른 피디는 말을 바꿔 “지급 책임은 계약을 맺은 오에스티 제작사에 있다. 아예 미지급된 것이 아니고 일부나마 금액이 지급된 상황이라 문화방송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외주제작사도 “통장에 1200만원밖에 없어 다음 작품 들어가면 해결해주겠다”며 외면했고, 오에스티 제작사도 문 감독의 연락을 피하고 있다. 문 감독은 “나뿐만 아니라 조명 쪽 스태프 등 다른 계약직 스태프들도 임금을 못 받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방송계 전문가들은 문화방송이 직접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희망연대 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이만재 조직국장은 “최근 들어 방송사들이 사실상 페이퍼 컴퍼니인 제작사와 계약을 맺도록 하고 이후 임금 정산이 이뤄지지 않아도 방송사는 법적 책임이 없다며 쏙 빠져나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문화체육관광부나 방송통신위원회 같은 관리 부서에서 임금 미지급 사태 등이 누적되면 등록을 취소하는 방향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는 “조장풍은 노동 의제를 정면으로 다룬 드라마였는데 문화방송이 노동권을 유행에 맞춘 패션으로 소비하거나 상품 기획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드라마 제작을 담당했던 문화방송 한 피디는 이에 대해 “미지급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며 “지급에 대한 법적 책임이 있는 이들에게 지급 의사를 계속 확인했고 지급 확약서도 쓰도록 했다”고 말했다. 외주제작사 본부장은 “지급 책임을 미루는 것은 아니다. 실제 회사에 돈이 없어 못 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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