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본법 제정을 위한 청년단체 연석회의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청년기본법 등 200여개 민생법안 통과를 가로막는 자유한국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서 시행 중인 법률 1463개 가운데 ‘아동’ ‘청소년’ ‘청년’ 관련 법률은 각각 몇 개일까?
정답은 8:8:1이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검색하면, ‘아동’과 ‘청소년’을 포함한 법률 이름은 각각 8개인데 ‘청년’이 포함된 법률은 1건(청년고용법)이 전부다. 성년이 되기 전 단계인 아동과 청소년은 사회적인 보호 대상인 만큼 관련 법률도 여럿이지만, 성인 진입 초입 단계랄 수 있는 청년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부터는 변화가 시작될 예정이다. 지난달 9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등과 더불어 청년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해서다. “청년이 겪는 사회문제를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는 첫 번째 법”(청년단체연석회의 환영 논평)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지만 ‘실효성 있는 청년정책을 위해서는 보완작업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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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적인 청년대책 집행 틀 마련
청년기본법은 청년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존재로 규정하고, 청년의 고용·창업·주거·복지·문화활동 등을 정부가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국무총리가 정부 청년정책 컨트롤타워로서 5년마다 청년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부처 장관과 시·도지사는 이 기본계획에 따른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했다. 정부는 청년의 고용·주거·교육·문화 등 실태를 매년 조사해 공표하고, 국회에 연차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관련 부처와 광역자치단체의 청년정책 결정 때 청년 참여나 의견개진을 의무화했고, 중앙정부와 지자체에 청년정책조정위원회와 청년정책책임관을 각각 두도록 했다.
청년정책을 국정 핵심과제로 삼자는 선언인 셈이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등 청년단체들은 “청년문제를 일자리라는 수단이 아닌 청년의 삶을 중심으로 바라보고, 청년문제 해결의 주체를 청년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기본을 만드는 법”이라며 환영 논평을 냈다. 청년기본법 제정은 경제구조 변환에 따른 고용시장 변화, 대물림(세습)에 바탕을 둔 격차 확대 등 사회변화의 주된 피해자가 청년세대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정부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도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김기헌 청년연구센터장(선임연구위원)은 “지금까지 정부 청년정책은 일자리대책(청년고용법)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일자리를 포함해 청년의 삶 전반을 살펴 종합적인 정책을 펴게 됐다는 점에서 (청년기본법 제정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문길 연구위원은 “청년을 위한 법을 넘어,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문제나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 성장의 정체, 일자리 부족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 부정적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의미도 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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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중앙정부’ 새로운 정책경로
청년세대가 겪는 어려움이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닌 만큼 청년기본법 제정은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그나마도 여러 우여곡절을 거친 결과다. 2016년 5월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자유한국당이 ‘1호 법안’(신보라 의원 대표 발의)으로 냈지만, 지난해 연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저지를 위한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법안통과 저지) 대상에 포함돼 처리가 무산됐던 게 대표적이다. 결국 지난달 9일 자유한국당이 불참한 가운데 신보라 의원이 유일한 찬성 토론자로 나서는 웃지 못할 광경을 연출한 끝에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청년기본법의 ‘연원’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뒤 청년들과의 정책간담회를 계기로 다양한 청년정책들이 시도되기 시작했고, 이는 2015년 1월 청년기본조례 제정으로 이어졌다. 청년기본조례는 2018년 2월 인천을 마지막으로 전국 17개 광역시·도에서 모두 제정됐고, 올 7월부터 시행되는 청년기본법의 모태가 됐다. 전국 기초자치단체(226개) 넷 중 셋(약 160곳)에서도 청년 관련 조례가 제정된 상태다.
종합해 보면, 지방자치단체들이 다양한 청년정책의 필요성을 절감해 그 원칙과 기준들을 만들었고, 중앙정부가 뒤늦게 이 모델을 수용한 셈이다.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서복경 청년연구센터장은 “보통의 경우와 달리 지방(조례)에서 중앙(법률)으로 올라갔고 법안을 만들 때 참고할 만한 외국 사례도 없었다. 여기에 정책당사자 참여를 의무화했다는 면에서 (여타 법률들과는 다른) 청년기본법의 고유한 특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김문길 연구위원도 “기존 사회보장제도는 전통적인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설계돼 있는데, 요즘은 취업이 어려워지고 플랫폼 노동이 등장하는 등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지자체들이 청년수당(서울시)과 청년배당(경기도) 등 과거에 없던 독특한 청년정책들을 내놓기 시작했고 중앙정부가 뒤늦게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제도적 접근이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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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정책과 연계 등 효율성 제고 필요
이렇듯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큰 의미가 있는 법률이지만, 세부적으로는 아쉬운 대목도 적지 않다. 7월부터 시행되는 청년기본법은 국회에 계류돼 있던 법안 10건을 정무위원회 차원에서 종합한 안인데, 종합하는 과정에서 ‘톤다운’이 이뤄졌다고 한다. 청년참여회의와 지방청년위원회(박주민 의원 안) 등 청년참여기구를 두는 방안이 삭제되고 ‘정책결정 과정에서 청년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로 낮아진 게 대표적이다.
‘취약계층 청년에 대한 주거·생활의 안정 및 주거수준의 향상 방안 마련’(강창일 의원 안), ‘취약·위험계층에 있는 청년에 대한 복지 방안을 강구’(박주민 의원 안), ‘취약계층 청년의 자립 및 노동시장 진입에 대한 지원방법 강구’(신보라 의원 안) 등의 내용도 빠졌다. 대신 ‘청년정책기본계획에는 취약계층 청년에 대한 별도 대책을 포함해야 한다’로 대체됐다. 취약계층 청년 지원과 관련한 책임 강도나 정책 의지가 크게 낮아진 셈이다.
김기헌 센터장은 “앞으로 마련될 시행령에는 취약계층 청년의 정의와 지원 내용은 물론, 니트족(NEET·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과 은둔형 외톨이 같은 다양한 유형의 청년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정교한 정책들이 담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동, 청소년, 청년정책들이 제각각 추진되고 있다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현재 아동복지법에서는 아동을 18살 미만으로 정의한다. 또 청소년기본법과 청소년보호법에서는 청소년을 각각 9~24살, 19살 미만으로 정했다. 청년고용법에서는 청년을 15~29살로 정의하는데, 이번에 제정된 청년기본법에서는 19~34살로 정했다. 구간들이 겹치고, 지난달 9일 선거권이 주어지는 나이를 19살에서 18살로 낮추는 법안도 국회를 통과한 점도 향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주무부처도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총리실로 제각각이다. 청년기본법도 청소년 정책처럼 여성가족부를 주무부처로 하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청년 당사자들의 반대와 부처 간 정책 조율 역량에 대한 우려 등이 겹치며 총리실로 정리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체계는 더 복잡해졌다. 특히 청년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정책과 연계가 필요하고, 청소년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아동정책 단계에서의 대응이나 연계가 중요한데, 이런 예방적·종합적 정책 접근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장기적으로는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교육아동청(소)년부가 생애 전반기 정책을 총괄하는 독일과 룩셈부르크 사례 등을 참고해 새로운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온다.
정책 전달체계의 비효율성도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청년일자리 정책만 보더라도 교육청 취업지원센터(전국 17곳), 고용복지플러스센터(고용노동부 등 101곳), 대학일자리센터(고용노동부 등 101곳), 기업인력애로센터(중소벤처기업부 16곳)와 지방자치단체들의 청년일자리센터(200여곳) 등이 제각각으로 운용되고 있어 총체적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순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h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