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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중국인 아내·딸 두고 차마…” 후베이 못 떠난 교민들은 지금

등록 2020-02-02 20:39수정 2020-02-03 12:23

[전세기 타지 않고 남은 교민들 표정]
다문화 가정 ‘생이별’에 귀국 포기
약혼자 격리 우려·통행증 없어 잔류
‘외국인 입국금지’ 정부 발표에 한숨도
중국 후베이성 이창시의 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아무개씨 제공
중국 후베이성 이창시의 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아무개씨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이 확산하면서 701명의 중국 후베이성과 우한시 교민들이 지난달 31일부터 이틀에 걸쳐 전세기를 타고 귀국했지만, 가족을 남겨두고 올 수 없거나 장거리 이동의 어려움 등 때문에 현지에 남은 교민도 상당수다. 한국 외교부는 신종 코로나가 발병한 것으로 꼽히는 우한에만 200여명의 교민이 남아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한국 외교부가 철수 권고를 한 후베이성으로 범위를 넓히면 훨씬 더 많은 교민이 현지에 머물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가 2일 후베이성 지역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겠다는 조처를 발표하면서 현지에 남은 교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아내의 고향인 후베이성 징저우시에 설을 쇠러 갔다가 발이 묶인 지성재(38)씨가 그런 경우다. 지씨는 후베이성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가 빠르게 번지자 한국행 전세기를 타는 것도 잠시 생각해봤다. 하지만 곧 그 마음을 접었다. 중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중국 국적자는 한국행 전세기에 타지 못한다. “아내와 첫째 딸은 중국인이고 저랑 둘째 딸만 한국인이에요. 같은 배를 탄 상황인데 아내 고향에서 빠져나와 저와 둘째만 한국에 가는 것이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전세기를 타려면) 여기서 차로 200㎞ 넘게 가야 하는데 통행이 가능할지도 모르겠고 한국에서도 신종 코로나가 퍼지는 상황이기도 하니까요.”

지씨는 원래 살던 광둥성 선전시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그 방법 역시 마땅치 않았다. 가장 가까운 공항은 90㎞가량 떨어진 이창공항인데, 2월13일을 기점으로 몇 차례 선전행 비행기를 예매했지만 몇 시간 뒤에 항공편이 취소됐다. 징저우시에서 선전시까지는 1100㎞ 넘게 떨어져 있어 차로 가기도 불가능하다. 도로 사정 역시 확신할 수 없다. 지씨는 도로 곳곳이 봉쇄되어 있다고 했다. 선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신종 코로나가 크게 번진 후베이성에 머물렀기 때문에 2주일 동안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는 후베이성에 다녀온 사람은 2주일 동안 집에 있다가 출근이나 등교를 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에선 지씨의 아이들에게 인터넷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중국 후베이성 이창시 내부 도로가 통제되고 있다. 이아무개씨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중국 후베이성 이창시 내부 도로가 통제되고 있다. 이아무개씨 제공
​중국 당국이 2일부터 후베이성 징저우시의 교통을 통제하겠다고 발표하자 주민들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 마트 앞에 줄을 서고 있다.(왼쪽) 마트에서는 채소류 등 식료품이 금세 동이 나기 시작했다.(오른쪽) 지성재씨 제공
​중국 당국이 2일부터 후베이성 징저우시의 교통을 통제하겠다고 발표하자 주민들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 마트 앞에 줄을 서고 있다.(왼쪽) 마트에서는 채소류 등 식료품이 금세 동이 나기 시작했다.(오른쪽) 지성재씨 제공
1일까지만 해도 징저우시에서의 생활은 크게 불편이 없었다. 밖에 못 나가는 것은 답답하지만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은 보통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열었다. 간단한 야채나 먹거리를 사는 데에도 무리가 없었다. 약국에서 마스크도 팔았다. 지씨는 지난주에 사놓은 마스크를 아직 다 쓰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집 밖에 나가 생필품을 사오기 때문에 마스크를 쓸 일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1일 저녁 징저우시의 교통을 통제한다는 발표가 나오자 다음날부터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2일 오전 슈퍼마켓과 시장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중국 정부가 조만간 도로 봉쇄를 풀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지씨는 꼼짝없이 신종 코로나가 진정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인과 결혼한 다른 한국인들도 지씨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후베이성에서 중국인과 결혼해 사는 한국인 가정의 경우 아이들이 어려서 쉽게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가족들을 두고 혼자 가는 것 역시 마음에 걸리고요. 그런 점에서 보면 중국 정부가 한국행 전세기에 중국 국적 가족을 태우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가요. 가족이 한국인이거나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중국 국적자들을 데리고 떠나버리면 이곳에 머물 수밖에 없는 중국인들이 배신감을 느끼겠죠.”

중국 후베이성 이창시의 한 마트에 식료품이 떨어져 가고 있다. 이아무개씨 제공
중국 후베이성 이창시의 한 마트에 식료품이 떨어져 가고 있다. 이아무개씨 제공
우한시에서 북서쪽으로 80㎞ 남짓 떨어진 후베이성 잉청시에 머무고 있는 이아무개(44)씨 역시 지씨와 같은 이유로 지역을 떠날 수 없었다. 한 기업의 선전시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그는 설을 맞아 아내의 고향인 잉청시를 찾은 터였다. 그곳에서 발이 묶인 이씨는 귀국을 위해 전세기 탑승 신청서까지 작성했지만 가족 중 중국 국적자는 동반이 불가능하다는 주 우한 한국총영사관의 공문을 보고 한국행을 포기했다. 영사관에서는 우한의 교민을 태우기 위해 톈허공항으로 온 2차 전세기를 통해 마스크 등 구호물품을 전달받아 3일부터 남아있는 교민들에게 배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한시 밖에 사는 교민들에게까지 구호물품이 전달될지는 미지수다. 이미 잉청시 밖으로 나가는 모든 길은 폐쇄된 상태다. 이씨는 언제 후베이성을 벗어날 수 짐작할 수가 없다.

후베이성 동쪽 끝인 리촨시에 머무는 김아무개(35)씨는 폐쇄된 도로가 하루빨리 풀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리촨시는 우한에서 차로 8시간 떨어진 곳이지만 같은 후베이성에 있어 이미 지난달 밖으로 나가는 도로가 모두 차단됐다고 한다. 그는 처음엔 한국행 전세기를 신청했지만, 최종 신청에선 빠졌다. 처음 전세기 신청 때는 근처 공항을 이용하거나 단체 버스를 타고 전세기를 이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우한시 외에 머무는 사람들은 공항까지 자신의 차를 이용해서 가야 한다는 공지가 나왔다. 차도 없었고, 중국 국적의 약혼자가 차로 바래다준다고 해도 우한 톈허공항으로가는길에 격리될 가능성이 컸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김씨는 전세기 탑승과 관련한 명확한 공지가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답답해했다. “우한시 밖에서 사는 사람은 알아서 집결지로 가거나 톈허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그 중간중간이 다 통제되어 있거든요. 영사관에서 ‘통제 지역을 통행할 수 있는 공문은 줄 수는 있는데 도시마다 허가를 안 해 줄 수 있다. 확실하지는 않다’는 취지로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우한시 밖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에 가지 못한 것으로 알아요.” 리촨시는 마스크가 동난 상태지만 식료품은 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다만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크게 줄었고, 확진자 1명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중국 후베이성 이창시의 시내 교통이 제한되고 있다. 이아무개씨 제공
중국 후베이성 이창시의 시내 교통이 제한되고 있다. 이아무개씨 제공
지난달 16일에 중국에 도착한 김씨는 애초 같은달 28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귀국일 전에 도로가 봉쇄되고 전세기를 신청하지 못해 중국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걱정이다. “중국의 각 공항에서 후베이성에 온 사람들을 2주 동안 격리된다는 말이돌아요. 거기서 2주 격리되고 다시 한국에 가서 2주 격리되면 4주를 격리돼야 하니까 막상 돌아가기도 막막한 상황이에요. 전세기를 못 타도 폐쇄가 풀리면 다른 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중국에서도 후베이성 사람을 격리하고 차단하려는 것 같아 걱정되기 시작하네요. 후베이성이 넓어서 이 지역에 있는 한국인들이 한곳에 집결해서 가는 게 쉽지 않거든요. 추가 전세기가 있다면 후베이성의 다른 공항에서 전세기가 출발하는 공항으로 갈 수 있는 통행증을 영사관 등에서 발급해주면 훨씬 더 좋겠어요.” 한국에서 프리랜서 영어 강사로 일하는 김씨는 중국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일에 지장을 받는다.

게다가 현지에 남은 한국인들은 2일 한국 정부가 후베이성 거주하거나 이 지역에 체류한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조처를 하겠다고 발표하자 동요가 커지고 있다. 김씨는 “정부 발표 이후 후베이성 교민들 대화방에서는 ‘봉쇄가 풀려도 한국에 못 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교민들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한국에서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김씨의 약혼녀는 앞이 캄캄해진 상황이다. 3월까지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면 휴학을 해야 한다. 올해 8월로 예정된 결혼식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잉청시에 머물고 있는 이씨도 마찬가지다. 이씨는 “중국인 아내와 이제 한국에 들어가기 힘들 것 같다.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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