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한겨레> 자료사진
버스회사처럼 고정적으로 연장근로를 하는 업종의 ‘시간급 통상임금’을 산정할 때 실제 근로시간을 사용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업무 특성상 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일 8시간)에 더해 고정적으로 연장·야간근로를 하기로 약정하는 버스·택시 기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서비스업·제조업 종사자 등의 통상임금이 높아지는 판결이어서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2일 이아무개씨 등 중부고속 퇴직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는 시간급 통상임금 산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시간급 통상임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근로시간을 정할 때 노동자가 실제 일한 시간만을 합산하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존 판례에서는 연장근로나 야간근로 1시간을 하면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임금 가산율(1.5배)을 고려해 1.5시간 일한 것으로 판단했는데, 대법원이 실제 일한 1시간만 적용하라고 판례를 바꾼 것이다. 지급받은 금액 대비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시간당 통상임금이 늘어나 노동자들에게 유리해진다. 연장·야간근로수당은 물론 연차수당, 장기근속수당 등 각종 수당과 퇴직금의 산정 기준이 통상임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준근로시간 8시간과 연장근로시간 2시간을 일한 대가로 10만원의 고정수당이 발생했다면, 시간급 통상임금은 10만원을 10시간으로 나눈 1만원이라는 것이다. 기존 판례에서는 연장근로시간 2시간을 1.5배한 3시간으로 계산해, 10만원을 11시간으로 나누어 통상임금은 9090원으로 계산됐다.
12명의 대법관은 시간당 통상임금을 산정할 때 가산율을 고려해야 할 법적 근거가 없고,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약정이 있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기존 판례가 시간급 통상임금이 실제 가치보다 더 적게 산정된다며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기택 대법관은 “근로기준법은 연장·야간근로 1시간의 가치는 기준근로시간 내의 주간근로 1.5시간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고 선언했다. 고정수당의 시간급을 산정하는 과정에서도 고려해야 한다”며 기존 판례를 유지하자는 반대의견을 냈다.
소송을 낸 버스기사들은 회사가 임금협정에 따라 산정한 ‘시급’을 시간급 통상임금으로 보고, 이를 기준으로 계산한 기본급, 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 주휴수당 등을 일당액으로 정한 뒤 근무일수를 곱해 월급을 지급받았다. 대법원의 새 판단이 적용되면, 시간급 통상임금이 늘게 돼 일당액 등이 늘어나는 효과가 예상된다.
이번 판결은 근로계약서나 단체협약, 임금협정 등을 통해 연장·야간근로를 고정적으로 하는 다수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박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비스연맹 법률원 노무사는 “운행 계획상 법정근로시간을 넘어 초과 근로를 안 할 수 없는 버스·택시 노동자, 서비스업종 대부분과 병원·한의원 등 고정적으로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 일하도록 약속돼 있는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판례”라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임금 소송에서 원고 노동자들이 청구 금액을 새 판례에 따라 변경하는 사례도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관계자는 “과거 계산 방식에 의하면 적게 산정되던 통상임금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며 “유사한 사안의 해석 지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법인 원의 노동법 전문 김도형 변호사는 “근로시간을 인위적으로 부풀려 통상임금을 적게 산정하는 바람에 노동자들이 일한 대가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왔다. 이번 판결은 노동자 보호 취지에 맞게 통상임금을 산정하라는 올바른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최우리 조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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