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기간 처음에는 아기 보는 게 진짜 너무 힘들구나, 회사보다 더 힘들다 (생각했어요). 아기를 보면서 집안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던 거 같아요. 휴직 전엔 지쳐 있으니까 아이가 실수하면 저도 모르게 짜증을 냈죠. 영화나 광고에서 아이가 색연필로 난장판을 해놓아도 (아빠가) 행복하게 보는 건 영화라서 그런 거라 생각했는데, (휴직하고는) 내가 그런 걸 느낀 거예요. 아이가 실수해도 예뻐 보이더라고요. 그랬을 때 행복함을 느꼈어요.”(건설업체 근무 37살 ㄱ씨)
최근 3년 이내 맞벌이 아내의 복직 등으로 육아휴직을 경험한 30~40대 남성들은 돌봄노동이 육체적·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일임을 체감하는 동시에, 자녀와 함께 지내며 행복감을 느낀 것으로 면접조사 결과 나타났다. 하지만 2018년 기준으로 육아휴직이 가능한 전체 남성 노동자 가운데 육아휴직을 한 이(육아휴직 사용률)는 1.2%에 불과하다. 여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11.9%다.
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학술지 <보건사회연구> 최신호에 실린 ‘육아휴직제를 사용한 남성의 가정 및 직장에서의 경험 연구’를 보면, 민간기업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한 1978~1985년생 남성 14명은 대체로 일을 하는 아내가 출산·육아휴직 기간이 끝나 복직을 하게 되면서 6개월 미만(4명) 혹은 10개월 이상(10명) 휴직을 하게 됐다. 14명 가운데 11명이 맞벌이였으며, 7명은 조부모나 가사도우미 등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직장생활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거나, 육아로 인해 심화한 부부 갈등을 완화하려고 육아휴직을 선택한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육아를 해본 경험은 ‘힘듦’으로 요약됐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등 육체적인 힘듦뿐 아니라 온전한 소통이 불가능한 아이들의 ‘불예측성’으로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주변 도움 없이 ‘독박육아’인 경우 외로움과 고립감, 자신이 아이를 충분히 잘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 같은 감정을 강하게 토로했다. 돌봄노동이 부모 어느 한쪽에 집중되는 환경에선 성별과 상관없이 누구든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의미다.
육아휴직 중 자녀를 돌보고 있는 아빠의 모습. 윤형중 랩2050 정책팀장 제공
그럼에도 정서적 어려움을 토로한 이들을 포함해 조사 참여자 모두가 자녀와 함께 지내며 행복감을 느꼈다고 했다.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확보하면서, 아이를 고유한 특성이 있는 한 사람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복직 이후엔 ‘워킹맘’과 동질감을 느끼거나 자녀 돌봄 지속을 위해 스스로 일을 조정해나가는 변화를 보이기도 했다.
연구진은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해 ‘한달 기간의 유급 아빠 출산휴가제’ 도입을 제안했다. 현재 남성 노동자는 배우자 출산휴가 10일(유급)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연구진은 아내의 산후 조리를 돕고 ‘아빠 됨’을 경험하려면 최소한 한달가량은 필요하다고 봤다. 또 배우자를 위한 출산휴가가 아닌 아빠가 되기 위한 출산휴가로 제도 명칭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런 휴가·휴직을 쓰기 어려운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도 아빠 출산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연구진은 제안했다. 연구에 참여한 최새은 한국교원대 교수는 “남성은 여전히 육아에 있어 아내·조부모에 이어 후발주자로 돼 있다. 아빠로서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보편적 시간이 확보되면 문화를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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