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보육 현장.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어린이집 보육교사와 원장들 사이에 ‘노동권’을 둘러싸고 큰 인식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육교사 2명 가운데 1명은 어린이집 근무 환경에 불만을 갖고 있었지만, 원장 등 사용자들은 88.6%가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다. 보육교사 10명 가운데 7명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해자의 70%가 어린이집 원장과 이사장 등이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달 보육교사 891명을 대상으로 설문해 8일 발표한 ‘보육교사 처우개선을 위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어린이집 보육교사 52.3%는 ‘직장 만족도’를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73.1%는 근로여건 불만족으로 이직을 고민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보육교사들이 주로 호소하는 문제는 장시간 노동, 낮은 업무 만족도, 고착화한 저임금 등이었다. 보육교사의 91.5%가 초과근무를 하고 있었고, 79.9%는 법으로 보장된 근무 중 휴게시간을 전혀 부여받지 못했다.
모욕 주기 등 업무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직장 내 괴롭힘도 흔했다. 서울시 국공립어린이집에서 일하는 한 보육교사는 “실수할 때마다 원장님이 ‘어렸을 때 아이큐 검사 안 해봤어?’,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한테 놀림 안 받았어?’ 등과 같이 비꼬더니 급기야 ‘엄마, 아빠는 뭐하시냐’고 했다”고 답했다. 경기도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유통기간 한달 지난 주스를 아이들에게 주지 말자고 했더니 원장이 ‘내가 선생님 이름 얘기하면 어디 가서도 일 못 하는 것 아느냐’고 하더라”라고 했다.
장시간 노동과 만연한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보육교사들의 급여 수준은 열악했다.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있다는 보육교사가 전체의 44.7%에 달했고, 보육교사 10명 중 7명은 임금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직장갑질119의 실태조사 결과는 2018년 11월 보건복지부가 3400개 어린이집 등에서 원장과 중간경력 보육교사 등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8 전국보육실태조사’ 결과와 큰 차이를 보였다. 보건복지부 조사에선 근무 환경이 불만족스럽다는 응답이 11.4%에 불과했고, 사직 의향이 있다는 보육교사는 12.2%뿐이었다. 최저임금이 잘 준수되고 있다는 응답은 96.9%, 원장과의 관계가 긍정적이란 답변도 91.5%에 달했다. 이에 대해 직장갑질119는 “정부 조사는 보육교사 처우 전반을 사용자인 원장이 응답하거나 원장이 섭외한 상급교사(주임 교사 등)인 ‘중간 경력자’를 표본으로 했다”며 “평균적인 보육교사 처우 관련 실태 파악이 불가능한 조사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보육교사 50.2%는 ‘노동조합이 필요하지만 불이익이 우려되어 가입이 꺼려진다’고 답했다. 이는 직장 규모가 작을 수 밖에 없는 어린이집의 특성상 원장을 중심으로 한 특수 관계에 기인한 두려움으로 보인다. 경기도의 한 국공립어린이집 보육교사는 “원장이 ‘요즘 노조 냄새나는 교사들 왜 이렇게 많냐’며 노조에 가입하면 어린이집으로 서류 다 날아오니까 가입할 생각 말라고 협박한다”고 말했다. 직장갑질119는 “보육교사의 88.5%가 정부의 보육교사 처우개선 노력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최근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감정노동자보호법’의 취지에 맞게 현황을 파악해 개선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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