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석 헌재소장 등 헌법재판관이 11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있다. 현장풀
국가를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를 소각하거나 훼손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5명의 재판관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국기 모독 등을 처벌하는 형법 105조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4(합헌) 대 2(일부 위헌) 대 3(위헌) 의견으로 위헌정족수(6명)를 채우지 못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7일 밝혔다. 형법 105조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다.
청구인 김아무개(29)씨는 2015년 4월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에 갔다가 집회를 통제하던 경찰에 항의하기 위해 가로 45㎝, 세로 30㎝ 크기의 종이 태극기를 태웠다가 체포됐다. 김씨는 우발적으로 국기를 태웠다고 주장했으나 검사는 형법 105조를 적용해 기소했다. 2016년 2월 1심 재판부는 모욕의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김씨는 국가가 모욕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금지된 모욕 행위가 명확하지 않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2016년 3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1989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성조기를 태우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텍사스주의 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고 판결한 사례를 참고했다.
그러나 재판관 4명(유남석, 이은애, 이선애, 이종석)은 합헌으로 판단했다. 국가도 모욕의 대상이 될 고유의 명예와 권위를 가지며 이 조항이 처벌하려 하는 모욕 행위가 무엇인지 일반인도 알 수 있다고 봤다. 표현의 자유도 침해되지 않는다고 봤다.
반면 재판관 3명(이석태, 김기영, 이미선)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고 짚었다. 국기를 훼손하는 행위는 정치적 사상이나 의견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며, 이를 처벌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재판관 2명(이영진, 문형배)은 “공용기가 아닌 국기 훼손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일부 위헌 의견을 냈다.
이 사건을 대리한 법무법인 이공의 양홍석 변호사는 “국기가 가진 상징성 때문에 국기를 소각하는 행위 자체는 정치적 의사 표현의 하나로 봐야 한다. 정치적 표현 행위를 모욕이라는 모호한 규정의 해석을 통해 처벌하는 것은 과하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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