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이사회가 열린 2015년 9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 회의장으로 김신 상사부문 사장이 들어가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앞두고 고의로 삼성물산의 주가를 낮추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는 김신 전 삼성물산 대표가 검찰에 출석했다가 ‘변호인 선임’ 문제로 조사를 받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김 전 대표는 삼성물산 회사법인과 주주에 피해를 끼친 혐의로 조사를 받으러 오면서, ‘피해자’ 격인 삼성물산 쪽 변호인을 대동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신 전 대표는 7일 오전 9시20분께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청사에 출석했다. 김 전 대표는 2015년 삼성물산 상사부문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주도했던 인물로, 합병을 앞두고 삼성물산의 주가를 고의적으로 낮춰 회사와 주주에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 등)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날 검찰은 김 전 대표를 조사하지 않았다. 김 전 대표가 삼성물산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를 대동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회사법인과 주주에게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피해자 격인 삼성물산의 변호사를 선임해 검찰 조사를 받으러 온 것이다. 검찰은 김 전 대표 쪽에 ‘이해충돌’ 우려를 강하게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법 31조1항은 수임을 승낙한 사건의 상대방이 위임한 동일 사건의 수임을 금지하고 있고, 변호사윤리장전 22조는 동일한 사건에 관해 상대방을 대리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배임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자신이 손해를 끼친 회사의 돈으로 선임된 변호사의 법률조력을 받는 것 역시 부적절해 보이는 대목이다. 결국 김 전 대표는 검찰 출석 2시간 만인 오전 11시께 귀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삼성물산이 합병 직전 해외 공사 수주와 같은 호재성 정보를 숨기는 등의 방식으로 기업 가치를 고의로 낮췄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합병을 앞둔 그해 초부터 신규주택 공급을 줄이고, 2조원 규모의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사 공사 수주 사실을 숨기는 등 ‘비정상적인’ 행보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그해 상반기 다른 대형 건설사 주가가 20∼30%씩 오르는 동안 삼성물산의 주가는 10% 가까이 떨어졌다.
검찰은 김 전 대표를 시작으로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등 합병 당시의 삼성 수뇌부를 연이어 소환해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합병 과정의 불법적인 주가조작 정황이 뚜렷한 만큼, 합병의 ‘최종 수혜자’인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도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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