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 부산 부산진구 ㅈ아파트 건설 현장.

지난해 8월부터 1천여 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짓고 있는 한 대형 건설사는 요즘 공사 현장 맞은편의 점집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 역술인이 10월부터 수시로 현장에 찾아와 “아파트를 짓는 바람에 맞은편 산의 정기가 끊겨 점 보러 오는 손님이 줄었으니 보상하라”며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공사가 끝날 때까지 한 달에 500만원씩이나 일시불로 1억을 내놓으라”며 매달 ‘손 없는 날’에는 공사를 중지해줄 것까지 요구하고 있다.

#2. 서울 송파구 ㅍ주상복합아파트 건설 현장.

서울 송파구 ㅈ아파트 ○○동 주민들은 최근 한 달 넘게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새로 들어서는 ㅍ주상복합 아파트가 약속과 달리 복도 쪽 창을 크게 내 사생활이 침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두 아파트 사이에 왕복 8차선 도로가 있고, 거리가 70m 이상 떨어졌다. 주민들은 “앞서 같은 아파트 옆동 주민들이 다른 건설사들한테 각각 4천만원과 1억여원을 보상받은 바 있다”며 “관례대로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ㅍ아파트는 애초 발코니가 ㅈ아파트 쪽인 대로변을 향하게 설계됐는데, 이들의 민원으로 발코니 방향을 반대편 상업지구 쪽으로 바꾸기까지 했다”며, “못사는 동네에서 보상금을 노리고 민원을 낸다는 얘긴 들었지만, 10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살면서도 이렇게 시비를 거는 것은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고 혀를 찼다.

건설사를 상대로 한 ‘막무가내식 민원’이 늘고 있다. 무리한 요구를 해도 공기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협상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악용하는 것이다.

서울 구로구 ㅇ아파트 주민들은 “바로 옆에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면서 소음·진동으로 고통이 심하다”며 한 달 넘게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 건설사가 “아파트 페인트 칠을 새로 해주고, 놀이터도 고쳐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듯했다. 그러나 주민들 가운데 일부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대책위를 새로 꾸렸다. 이들은 “주상복합 건물 때문에 조망·통풍권이 훼손됐으니 집값 하락분까지 보상하라”며, 그 근거로 지난해 7월 1억6500만원이던 35평 아파트 시세가 9월에 1억4900만원대로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8·31 부동산 대책 여파로 이 일대 모든 아파트 값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지은 지 1년 남짓된 서울 강남의 ㅇ오피스텔은 이런 ‘악성 민원’에 건설사가 역공을 펼쳐 정면돌파를 한 경우다. 건물 준공을 앞두고 앞 모텔 주인이 “공사기간 1년 동안 낮손님이 줄어들었으니 1억7천만원을 보상하라”고 요구해 왔다. 이에 ㅇ건설은 일단 보상을 약속한 뒤 공사 전과 뒤 모텔 매출액 차이를 확인할 세무서 신고자료를 요구했다. 결국 모텔 주인은 요구를 철회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