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의 노사업무 총괄 책임자였던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이 그룹 차원에서 이뤄진 ‘조직적·지속적 범행’이라고 판단했다.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면서 노조 탄압을 자행한 삼성그룹에 대한 첫 형사 처벌이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손동환)는 업무방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강경훈 부사장에게 징역 1년4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우석 전 삼성에버랜드 인사지원실장도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다만 항소심에 대비하라는 취지로 이들을 법정 구속하진 않았다. 함께 기소된 전·현직 에버랜드 직원 11명은 징역 6~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혹은 벌금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우리 헌법은 근로자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선언했다. (노동3권은) 생존권적 기본권이자 사회 보호 기능을 가진다. 피고인들은 회사 지침을 성실히 수행했다고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가 기초로 삼은 약속보다 중요한 사정이라 볼 순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삼성이 무노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미전실을 주축으로 조직적으로 노조 와해를 진행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미전실은 삼성그룹 전 계열사를 지원·조직하는 최고 의사 결정 보좌기관으로, 비노조 경영을 고수하는 사령탑 역할을 하며 각 계열사 노사문제를 수시로 확인·점검했다”며 “그룹 노사전략을 토대로 삼성그룹 차원에서 노조 설립 저지 및 무력화로 비노조 경영 방침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에스(S) 문건’이라 불린 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참고자료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 실행을 전제로 한 구체적 강령에 해당한다며 그룹 차원의 노조 대응 전략이 존재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강 부사장 등은 2011년 6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어용노조’를 만들어 직원들의 노조 설립을 방해하고, 노조 설립 핵심 인물인 조장희 에버랜드 노동조합 부지회장을 부당 해고하는 방식 등으로 노조활동을 가로막았다는 혐의를 받는다.
특히 조 부지회장을 부당 징계해 노조활동을 방해했다는 ‘업무방해’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대목이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형법상 업무방해죄는 최대 징역 5년으로, 최대 징역 2년인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보다 형량이 세다. 재판부는 노조원에 관한 징계권 행사는 삼성 노조를 무력화하는 ‘위력’을 행사한 것과 같다고 판단했다. 정병욱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보통 업무방해는 노조 파업 때 사용자가 활용했는데, 이번 판결은 반대로 사업자가 노조활동을 방해하면 업무방해로 처벌할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권을 방해하면 사용자도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실형 선고까지 받을 수 있다는 선례가 됐다는 것이다. 기업의 노조활동 방해 행위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된 사례는 드물다.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은 2013년 삼성그룹이 작성한 ‘에스(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폭로되면서 외부로 알려졌다. 문건 공개 뒤 금속노조 삼성지회는 이건희 회장 등 관련자 36명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소·고발했지만 2년이 지난 2015년 ‘문건 진위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묻힐 뻔한 사건은 지난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송비 대납 사건으로 삼성 서초동 사옥과 영포빌딩을 압수수색하던 중 다량의 삼성 노조 와해 문건이 나오면서 수사가 재개됐다.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왔던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노조활동을 광범위하게 탄압해왔지만 형사 처벌을 받은 사례는 없었다.
검찰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혐의로 강 부사장과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피고인 32명도 재판에 넘겼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선고는 17일 열린다.
장예지 고한솔 기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