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에이치아이브이/에이즈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의 공동성명. 페이스북 갈무리.
1일 ‘세계 에이치아이브이/에이즈(HIV/AIDS)의 날’을 맞은 가운데, 인권 보호에 앞장서야 할 정치권이 되레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등 ‘소수자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게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항문성교로 에이즈에 감염되는데 그걸 조장하는 게 동성애”라며 “소수자 인권이 중요하긴 한데 에이즈 환자가 1년에 1000명이라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권위가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소수자와 에이치아이브이 감염인에 대한 편견을 고스란히 반영한 발언이다. 이에 최 위원장은 “저는 기본적인 개인의 권리를 인정한다. 에이즈는 안전한 성관계로 예방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달 27일 윤종필 자유한국당 의원실과 한국가족보건협회의 주관으로 열린 ‘디셈버퍼스트 세미나’에서도 “동성 간 성 접촉이 에이즈 감염의 주된 경로이니 예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준명 한국에이즈예방재단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보건당국은 동성 간 성 접촉이 에이즈의 주된 감염경로임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며 “학교 보건교육 현장에서 적극적인 예방 및 관리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에이즈의 원인을 동성애로 규정하는 발언이 나오자 시민사회단체들은 “악의적이고 혐오를 덧씌우는 주장”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이치아이브이/에이즈 인권활동가 네트워크’·‘평등과 연대로! 인권운동더하기’ 등 시민사회단체는 지난달 29일 성명을 내고 이 의원의 발언에 대해 “동성애가 에이즈의 주범이고 에이즈로 국력이 약화한다는 주장은 이미 틀렸음이 입증됐고 접근부터 악의적이라는 것이 알려진 지 오래”라며 “이런 이야기가 국회 운영위에서 버젓이 언급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신의 지위를 행사해 타인에게 혐오를 씌우고 사회로부터 삭제하는 태도를 보면 국회의원으로서 그의 자질이 의심된다”며 이 의원의 사과를 촉구했다.
또 디셈버퍼스트 세미나에 대해서도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가 사회의 위기인 것처럼 선동한다”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성명에서 “디셈버퍼스트 세미나는 ‘에이치아이브이 감염인과 의료보건인들이 들려주는 청소년 에이즈 예방 이야기’라는 그럴듯한 제목 아래 이뤄졌다”며 “실상은 잘못된 지식으로 질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놓고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사회 위기로 선동하는 것과 진배없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의원들까지 가세해 낙인찍기에 힘을 보탰다”며 “이는 성소수자와 에이즈 감염인을 도구 삼아 위기를 조장하고 당사자들의 존재를 사회로부터 배제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에이즈 감염인과 성소수자에 대해 낙인을 찍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책임 있는 국가기관은 손을 놓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종걸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장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국회의원들은 동성애나 에이즈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데도 에이즈 감염인을 고립화시키는 발언을 하며 ‘혐오정치’를 펼치고 있다. 질병에 대한 관리 역할을 하는 질병관리본부는 이런 발언을 문제적으로 다루지 않고 에이즈와 관련해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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