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경기도 의왕시의 비닐하우스 집에서 목줄이 풀린 도사견에 물려 죽은 권영인군의 신발이 개집 철장 앞에 덩그라니 놓여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손주 주검을 계속 방치했다구? 그건 엉터리 기사야!”
[2005사람사람들]도사견에 숨진 소년, 그 할아버지의 회한
[2005사람사람들]도사견에 숨진 소년, 그 할아버지의 회한
올 겨울 충남 서산에는 ‘눈 폭탄’이 쏟아져 내렸다. 투덕투덕, 눈 떨어지는 소리에도 부부는 쉽사리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부르며 아홉살 외손주가 걸어오는 것만 같아서다.
농삿일 때문에 지방에 간 사이 홀로 집을 지키던 외손주 권영인(9)군이 키우던 도사견에게 물려 숨진 김아무개(61)씨 부부에게 올 겨울 만큼 시린 적은 없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떠들썩했던 세상의 관심은 썰물처럼 밀려 갔다.
그러나 이혼한 딸이 맡긴 영인이를 키우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직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김씨 부부는 카메라 세례 탓에 제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의 비닐하우스 집에도 가지 못하고 충남 서산과 서울의 친척집을 떠돌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김씨는 수십차례 통화에서 손주 잃은 슬픔을 얘기하면서도, 정작 29일 기자와 만나기로 한 자리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라고 그 어린 것 혼자 두고 가고 싶었겠어?” 김씨는 악몽같은 그 날에 대해 얘기했다. 영인이한테 사고가 일어나기 2~3개월 전 김씨는 17년 동안 살던 비닐하우스 집의 토지 불법점유에 대한 벌금 100만원을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노역장으로 보내질 수 있다는 말에, ‘추수를 서둘러 돈을 마련해야겠다’며 부랴부랴 서산으로 향했다.
김씨는 처가 쪽에서 논 13마지기를 빌려 부치고 있다. “함께 가겠냐”고 물었지만, 영인이는 “학교도 가야 하고, 혼자 있어도 괜찮으니까 다녀오세요”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홀로 있을 손자가 눈에 밟혀 일을 서두르느라 비오는 날까지 무리를 하다가 그만 콤바인이 논에 빠져 넘어져 버렸다. 돈은 돈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손자만 잃게 됐다. 김씨는 “아이의 주검이 병원에 사흘동안 방치돼 있다”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영인이를 찾는 가족이 없었다고? 경찰서에서도, 장례식장에서도 줄곧 영인이 곁에 있었어. 차림이 허름해서인지, 아무도 나한테 ‘영인이 할아버지냐’고 묻지도 않더라고. 그래놓고 그 모양으로 엉터리 기사를 쓴 거야.” 전화선 건너편 김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애지중지하던 손자를 잃은 것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데” 졸지에 매정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돼버린 김씨 부부의 마음은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고 한다. 12월 초, 김씨의 아들이 낳은 또 다른 손자가 백일을 맞았다. 김씨는 아이의 백일을 축하하러 온 손님들 앞에서 “내색은 못했지만,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난 영인이 생각에 말못할 고통이 덮쳐 왔다”고 했다. 영인이가 죽은 뒤 생긴 인터넷 추모사이트(www.동물원기린.com)에는 그동안 8500여명이 다녀갔다. 분주하던 추모 사이트는 시간이 갈수록 찾는 이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다. 죽은 영인이의 시간은 멈췄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시계는 속절없이 바쁘게 흘러가고 있다. <한겨레> 사회부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김씨는 처가 쪽에서 논 13마지기를 빌려 부치고 있다. “함께 가겠냐”고 물었지만, 영인이는 “학교도 가야 하고, 혼자 있어도 괜찮으니까 다녀오세요”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홀로 있을 손자가 눈에 밟혀 일을 서두르느라 비오는 날까지 무리를 하다가 그만 콤바인이 논에 빠져 넘어져 버렸다. 돈은 돈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손자만 잃게 됐다. 김씨는 “아이의 주검이 병원에 사흘동안 방치돼 있다”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영인이를 찾는 가족이 없었다고? 경찰서에서도, 장례식장에서도 줄곧 영인이 곁에 있었어. 차림이 허름해서인지, 아무도 나한테 ‘영인이 할아버지냐’고 묻지도 않더라고. 그래놓고 그 모양으로 엉터리 기사를 쓴 거야.” 전화선 건너편 김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애지중지하던 손자를 잃은 것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데” 졸지에 매정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돼버린 김씨 부부의 마음은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고 한다. 12월 초, 김씨의 아들이 낳은 또 다른 손자가 백일을 맞았다. 김씨는 아이의 백일을 축하하러 온 손님들 앞에서 “내색은 못했지만,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난 영인이 생각에 말못할 고통이 덮쳐 왔다”고 했다. 영인이가 죽은 뒤 생긴 인터넷 추모사이트(www.동물원기린.com)에는 그동안 8500여명이 다녀갔다. 분주하던 추모 사이트는 시간이 갈수록 찾는 이의 발길이 뜸해지고 있다. 죽은 영인이의 시간은 멈췄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시계는 속절없이 바쁘게 흘러가고 있다. <한겨레> 사회부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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