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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쇼미더 근로기준법’...‘힙합’으로 되살아난 청년 전태일

등록 2019-11-17 13:40수정 2019-11-18 15:14

16일 광화문광장에서 제1회 전태일 힙합 음악제 개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전태일 일갈이 힙합
한국 힙합의 한계 넘어선 경연
“우리 이 노래 그 사람들 앞에서 했으면 큰일 났어요.”

16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회 ‘전태일 힙합 음악제’의 마지막 무대에 선 래퍼 허클베리피는 조금 상기된 모습이었다. 혼란의 복판이었다. 광화문 광장 중심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기리는 랩이 토해지던 시간, 왼쪽 도로에는 백발 노인이 산업화의 영웅 박정희를 기리는 ‘나라 지킴이 고교연합’의 깃발을 들고 섰다. 오른쪽 도로에선 ‘불법권력찬탈세력 좌파독재정권 퇴진’을 외치는 우리공화당 지지자들이 행진했다.

16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회 전태일 힙합 음악제> 최종 공연 무대에 오른 참가자가 경연을 펼치고 있다. 이번 음악제는 ’사랑 행동 연대’를 키워드로 열렸다. 김완 기자
16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회 전태일 힙합 음악제> 최종 공연 무대에 오른 참가자가 경연을 펼치고 있다. 이번 음악제는 ’사랑 행동 연대’를 키워드로 열렸다. 김완 기자
저항 노동자 전태일이 ‘청년’으로 살아났다. 청년과 노동.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22살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제 몸을 살라 항거한 이후 나아갔다 돌아오고 꿈틀했지만 멈추기도 했던 시계추 같은 말들이었다. 어떤 이들에게 전태일은 노동자의 정신을 상징하는 이름이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 전태일은 가끔 신문 사회면에서 보는 이름이었다.

영원히 좁혀질 것 같지 않던 거리감이 한 구절에서 버무려지는 경험은 신선했다. 전태일 힙합 음악제 본선에 진출한 12팀 가운데 한 팀이었던 지피에스(GPS)는 랩을 시작하며 걸쭉한 사투리로 이런 ‘펀치라인’(힙합에서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중의적 표현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가사)을 썼다. ‘에에에이 네 들었나/ 전태일 가가 저기 저 서울 올라 가가 지 몸에 불 질렀다 카데/ (와?) 데모하다 그래 됐다 카데/ (와-) 노동법규라 카는 게 딱딱 지켜졌음 가도 안캐캣지(안 그랬겠지)/ 지가 원해서 그랬겠나/ 돈 잘 버는 그놈들이 싹 다 죽인거지’(지피에스, ‘그는 죽은 것일까, 그를 죽인 것일까’ 중)

음악제 행사 기획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던 한국 힙합 1세대 그룹 가리온의 ‘엠시(MC) 메타’는 “전태일 힙합 음악제의 키워드가 ‘사랑, 행동, 연대’다. 힙합의 키워드는 ‘사랑, 평화, 즐거움’이다.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전태일 열사의 일갈이 힙합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태일 기념관의 유현아 문화사업팀장은 “전태일로 상징되는 70년대의 노동 현실이 지금 청년들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아픔 슬픔 고통의 전태일이 아니라 지금 청년들에게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청년 전태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청년 전태일이 불의에 대항하는 방식이 실천 이전에 글쓰기였고, 그게 지금 랩의 가사들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16일부터 온라인 접수를 시작한 전태일 힙합 음악제에는 1,2차 심사를 거치는 동안 400여 팀이 응모했다. 최종 공연에는 총 12팀이 뽑혔고, 우승자 없이 3팀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일백만원이 수여되고, 음원은 제작돼 발표될 예정이다. 최종 3팀은 <예술가>를 부른 ‘신진’, <무제>를 부른 ‘지푸’, <난 이미 성공했지>를 부른 ‘줍에이’가 선정됐다. 최종 심사를 맡았던 래퍼 ‘딥플로우’는 “검증된 이들이 많이 참가해 굉장히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팀이 많았다. 주제가 분명했던 경연이었던 만큼 가사와 컨셉을 유심히 살폈고 최종적으론 곡과 랩의 완성도를 따졌다”고 말했다.

한국의 힙합 음악이 ‘저항의 스타일을 표방하나 오히려 혐오 표현과 지나친 자기 과시만을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이 컸던 가운데 전태일 힙합 음악제는 한국 힙합 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엠시(MC) 메타는 “‘스웨그’(자기 과시)와 ‘플렉스’(돈 자랑)로 대변되는 상업적 성공만 쫓는 한국 힙합의 현실에서 전태일 힙합 음악제가 아니면 절대 들을 수 없는 노래들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전태일 힙합 음악제가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처럼 실력 있는 힙합 뮤지션들의 등용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전태일을 알리고자 하는 기획의도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맨 앞줄에서 공연을 관람한 김혜민(27)씨는 “전태일을 잘 몰랐다가, 힙합으로 노래한다고 해서 찾아봤다. 전태일이란 주제를 가지고 각자의 스타일로 음악을 만들어온 뮤지션들의 열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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