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용씨가 보낸 손목의 흉터. 삼청교육대에서 구타당하다 유리에 찔려 생긴 이 흉터로 박씨는 여태 엄지손가락에 힘을 못 주고 있다. 박현용씨 제공
‘삼청교육대 ’가 40년 만에 다시 소환됐다 . 4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에게 “삼청교육대 교육을 한번 받아야 한다 ”고 한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의 발언 때문이다 . 다음날 박 전 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삼청교육대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라면서도 “사과할 의사가 없다 ”고 말했다 .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던 박현용 (59), 김정곤 (62)씨의 이야기를 <한겨레 >가 직접 들어봤다 . 영문도 모른 채 국가폭력에 짓밟혔던 이들은 상처를 헤집는 박 전 대장의 말에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입을 모았다.
“자기가 삼청교육대를 뭘 안다고…. 말이라고 다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가슴앓이하는 피해자도 많은데 어디서 삼청교육대 얘기를 꺼냅니까.”
담담히 말을 이어가던 박현용씨가 목소리를 높이다 이내 분을 못 이긴 듯 흐느끼기 시작했다. ‘삼청교육대’를 ‘극기훈련’쯤으로 언급한 박찬주 전 대장의 막말이 36년간 고통을 견뎌온 박씨의 가슴을 헤집었다. 박씨는 1980년 9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1983년 7월 청송보호감호소에서 출소했다. 그 3년 때문에 박씨의 60년 인생은 말 그대로 산산조각 났다.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난 박씨는 14살부터 구둣방에서 구두 수선 일을 했다. 만 스무살이 되던 해 경찰관이 집에서 자고 있던 박씨를 깨워 아버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두들겨 패고 근처 파출소로 끌고 갔다. 박씨는 부산에서 강원도 원주의 38사단으로, 다시 경기도 파주의 28사단 5152부대로 끌려갔다. 도착하자마자 군인들은 군기를 잡는다며 박씨를 두들겨 팼다. 그곳에서 사람이 맞아 죽는 것도 보았다. “제 (숙소) 옆 사람이 조교들이 먹다 남은 짬밥을 손으로 집어 먹다 들킨 기라. 그때부터 쇠막대기로 목이고 등허리고 두들겨 패는데…. ‘너희들은 개고, 죽여도 된다고 명령받았다’데요. 얼마나 두들겨 맞았으면 눈에서, 입에서, 코에서 피가 나고요. 옆에서 자다가 죽어버렸어요.”
살아남아도 사는 게 아닌 삶이었다. 박씨도 조교에게 얻어맞다 유리에 오른쪽 팔목을 베여 동맥과 정맥이 모두 잘려나갔다. 야무지게 구두를 고치던 소년의 손은 그 뒤 물건도 제대로 쥐지 못한다. 평생 시멘트 들통을 지고 건물을 오르내리는 단순 일용직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벌이가 넉넉지 않으니 집안을 돌보기 어려웠고, 결혼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저는 지금도 삼청교육대만 생각하면 눈물이 주르륵 납니다. 이게 잊혀진다면 전 개돼집니더. 제가 눈 감을 때까지 못 잊지예.” 박씨가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3만9742명. 박씨와 같은 ‘삼청교육’ 피해자들의 수다.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비상계엄 아래 ‘사회 정화’라는 명분으로 군대 내에 삼청교육대를 설치해 무고한 이들까지 잡아들여 가혹한 훈련을 실시했다. 학생 980명, 여성 319명이 포함됐고 중학생도 최소 17명이 있었던 것으로 2006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서 밝혀졌다. 현장에서 숨진 이가 54명, 후유증으로 숨진 이가 397명, 정신장애 등 상해자가 2678명에 이른다.
김정곤씨도 1980년 7월30일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가 1년 만에 나온 뒤 2급 장애를 얻었다. 수시로 받던 ‘원산폭격’과 매질로 후유증을 얻어 10여년 전 목 수술을 받은 뒤 오랫동안 제 발로 걷지 못했다. 원래 자동차정비공이었지만 일을 할 수 없어 기초생활급여에 의존해 살아왔다. 그러나 그가 피해를 호소할 곳은 없다. 2004년 ‘삼청교육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한시적으로 보상을 해줬지만 신청기간이 2004년 9월부터 2005년 7월까지로 짧아, 보상을 받은 이는 전체 피해자의 11.6%(4644명)에 그쳤다. 김씨도 이 기간을 놓쳤다. 2015년 6월30일 삼청교육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조차 폐지돼 피해자가 개별 소송을 하지 않는 한 피해 보상을 받을 길은 없다.
국가에 짓밟혔던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국가는 아직 없다. 가벼운 말로 농락하는 정치인들이 있을 뿐이다. 김정곤씨가 피를 토하듯 말했다. “도망가다 죽은 사람도 있고, 맞아서 죽은 사람도 있고, 저처럼 평생 장애를 입은 사람도 있습니다. 어린 학생들도 잡혀왔고요. 그런 세상이 어딨습니까. 그런데 삼청교육대 얘기를 해요?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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