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최근 서울고법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나라 위해 부끄럽지 않게 일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28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정원장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았다는 의혹을 부인하며 증언한 마지막 발언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지시로 특활비를 국정원에 요구했다’는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의 진술 등을 부인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이순형) 심리로 열린 원 전 원장 재판에 이 전 대통령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증인 신문은 오후 2시 시작돼 네 시간 넘게 진행됐다. 그 가운데 3시간은 비공개 신문이었고, 1시간여가 취재진에 공개됐다. 비공개 신문에서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원 전 원장으로부터 전달받은 10만 달러가 뇌물이 아닌 ‘대북 공작’ 목적에 맞게 사용됐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5시께 시작된 한 시간 가량의 공개 증인 신문에서 검찰은 2010년 김백준 전 기획관을 통해 이 전 대통령 쪽에 국정원 특활비 2억원이 흘러간 정황을 집중 추궁했다. 이 전 대통령은 “김 전 기획관이 원 전 원장에게 국정원 자금을 요청한 줄은 전혀 몰랐다”며 “본인 실수로 예산을 누락한 부분이 있어 국정원 자금을 쓴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인간적으로 (김 전 기획관이) 왜 그렇게 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든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당시 원 전 원장과 꾸준히 독대해온 점을 들어, 김 전 기획관이 없는 사실을 진술했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그 대답은 검찰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부터 원 전 원장이 직·간접적으로 꾸준히 사임 의사를 전달했지만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도 증언했다. 원 전 원장이 국정원장직을 유지하기 위해 특활비를 전달한 것이라는 검찰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이 전 대통령은 “그때 사표를 받고 새로운 사람을 구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2010년 김백준 전 기획관으로부터 청와대 특활비가 부족하다는 보고를 받고 원 전 원장에게 특활비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2011년 국정원장직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10만 달러를 추가로 받은 혐의도 포함됐다. 1심 재판부는 2억원은 국고손실, 10만 달러는 뇌물 혐의가 인정된다며 모두 유죄 판결했다. 이 전 대통령은 본인의 항소심에서 “김 전 기획관과 공모한 바 없고, 원 전 원장에게 대가성 뇌물을 받지 않았다”며 두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타인의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경우는 1996년 고 최규하 전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다. 최 전 대통령은 당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 출석했으나 증언을 거부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