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포토] 다시는 이런 비극 일어나지 않길…

등록 2019-10-28 09:29수정 2019-10-28 09:40

2017년 제주도 생수공장으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이민호 군은 홀로 작업하던 중 프레스 기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베테랑 전임자에게 단 일주일 인수인계를 받은 뒤 안전수칙도, 안전장비도, 책임자도 없이 열아홉 이군은 거대한 기계 앞에 홀로 서야했다. 두 번째 추모기일을 앞둔 26일, 그를 똑닮은 조형물이 제주도로 향할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장실습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민호 학생의 아버지 이상영씨가 26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더피네 작업장에서 아들의 동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백소아 기자
현장실습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민호 학생의 아버지 이상영씨가 26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더피네 작업장에서 아들의 동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백소아 기자

“저기 서있네”

경기도 남양주시 한적한 시골 구석에 자리잡은 작업장에 도착해 차에 내리자마자 아버지 이상영씨는 바로 아들의 조형물을 찾아냈다. 먼저 조형물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어 아내에게 보냈다. 아내는 흙에서 동으로 변한 아들의 모습에 느낌이 다르다 답했다고 한다. 이내 아들에 앞에 다가간 아버지는 아들과 악수를 나눴다. 악수를 나눈 뒤 팔을 꾹꾹 눌러본다. 그러고는 얼굴에 바싹 다가갔다. 아들의 안경을 이리 저리 만지며 눈높이를 맞춰본다. 마치 삐딱하게 쓴 안경을 다시 맞춰주는 모습이었다. 허허 웃으며 안경을 만지다 이내 다시 몇걸음 멀어진다. 다시 휴대전화를 꺼내 조형물의 사진을 찍는다.

현장실습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민호 학생의 아버지 이상영씨가 26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더피네 작업장에서 아들의 동상을 살펴보고 있다. 백소아 기자
현장실습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민호 학생의 아버지 이상영씨가 26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더피네 작업장에서 아들의 동상을 살펴보고 있다. 백소아 기자

사진을 찍기 위해 조형물 옆에 선 아버지는 멋쩍게 웃는다. 키는 원래 민호가 더 컸다며 살아 있다면 더 컸을거라고 말한다. 184cm의 지 형보다 더 컸을 거라고. 두 형제는 어릴적 함께 농구부에서 운동을 했다.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섰지만 아버지는 카메라를 잘 보지 않았다. 아들 얼굴 보기가 바쁘다.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본다. “눈이 짝짝이가 된 거 같아. 아닌가 내가 잘못 본건가” 하며 아들의 안경 자리를 다시 고쳐준다.

민호의 추모비를 먼저 제안한 건 제주교육청이었다. 그래서 이씨는 그렇다면 추모비를 교육청에 세워달라 요청했다. 민호의 사고는 어른들의 잘못으로 벌어졌기 때문에 출퇴근 때 추모비를 보면서 다시는 이런일이 없게 해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교육청은 크고 작은 일이 생길때마다 추모비를 교육청에 세운다면 교육청 마당이 추모비로 가득찰 것이라며 거절했다. 결국 추모비는 제주 학생문화원에 세울 예정이다. 위치뿐만이 아니라 추모비에 적힐 글이 또 문제다. 김경훈 시인이 적어준 추모시도 몇 번이나 고쳤다고 한다. 제막식이 한 달도 남지 않았지만 한 두 단어의 문제로 아직 작업이 마무리 되지 못했다. 결국 작업이 또 일주일 연기됐다. 2년 전 제주교육청장으로 엄수된 이군의 영결식에서 이석문 제주교육감은 조사를 통해 “미안하다. 어른들의 왜곡된 욕망과 이기심이 꽃다운 삶을 저물게 했다. 육중한 쇳덩어리에 눌려 고통을 호소할 때조차 어른들은 한 줌의 온기 어린 손길을 건네지 못했다”며 “사력을 다해 아이들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펼쳐 보이겠다. 하늘에서 우리의 노력을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현장실습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민호 학생의 아버지 이상영씨가 26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더피네 작업장에서 아들의 동상과 악수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현장실습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민호 학생의 아버지 이상영씨가 26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더피네 작업장에서 아들의 동상과 악수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이군이 떠난 뒤 2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난 1월, 재판부가 생수공장 대표인 김아무개씨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또 공장장인 김아무개씨에 대해서도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전에 철저한 안전관리를 하지 못한 과실이 적지 않지만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고가 난 점, 또 잘못을 반성하는 점 등을 감안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다행히 24일 열린 항소심 첫 재판에서 재판부는 “어떤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는지 밝힐 필요가 있어보인다”고 밝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라 전망했다. 이씨는 이 군과 같이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가족들과 ‘산업재해 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을 만들었다. 앞으로 같은 사고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며 유가족들이 나서야 한다고 만든 모임이다. 민호의 조형물을 확인하러 가는 날에도 고 이한빛 프로듀서의 추모제와 김용균재단 출범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날이었다. 한달에 한 번씩은 지방을 다니며 특성화고 이야기마당에 참석한다. 특성화고 학생들, 교사들, 그리고 지역활동가들을 만나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문제점들, 궁금해 하는 이야기들에 답해준다고 한다.

현장실습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민호 학생의 아버지 이상영씨가 26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더피네 작업장에서 아들의 동상 옆에 서 있다. 백소아 기자
현장실습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민호 학생의 아버지 이상영씨가 26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더피네 작업장에서 아들의 동상 옆에 서 있다. 백소아 기자

“민호가 살아있을 때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자기는 죽기전에 꼭 무엇을 남기고 죽을거라고. 그런데 자기를 남기고 떠났네요”

힘없이 웃으며 발걸음을 돌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마음이 부서진다. 추모조형물 제막식은 이군의 두번째 기일인 11월 19일 제주 학생문화원에서 열린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이재명 ‘선거법 판결’, 내년 중 확정될 수도…대법 ‘기한 준수’ 강조 1.

이재명 ‘선거법 판결’, 내년 중 확정될 수도…대법 ‘기한 준수’ 강조

이재명 산 넘어 산…‘의원직 상실형’ 이어 재판 3개 더 남았다 2.

이재명 산 넘어 산…‘의원직 상실형’ 이어 재판 3개 더 남았다

‘입틀막’ 경호처, 윤 골프 취재하던 기자 폰 강제로 뺏어…경찰 입건도 3.

‘입틀막’ 경호처, 윤 골프 취재하던 기자 폰 강제로 뺏어…경찰 입건도

[단독] 용산-김영선 엇갈리는 주장…김 “윤·이준석에 명태균 내가 소개” 4.

[단독] 용산-김영선 엇갈리는 주장…김 “윤·이준석에 명태균 내가 소개”

한국 부유해도 한국 노인은 가난…78%가 생계비 때문에 노동 5.

한국 부유해도 한국 노인은 가난…78%가 생계비 때문에 노동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