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피해자 돕는 ‘김용균재단’ 26일 출범
“‘김용균 특조위’ 활동 이후 권고사항 제자리
가습기·세월호 유족, 시민단체 등과 연대할 것”
“‘김용균 특조위’ 활동 이후 권고사항 제자리
가습기·세월호 유족, 시민단체 등과 연대할 것”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2018년 12월23일 오전 충남 태안군 태안읍 군청로 보건의료원 상례원에 차려진 빈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태안/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의 초대 대표를 맡으셨다. 어깨가 무거우실 것 같다.
“용균이의 이름에 걸맞게 재단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향을 잘 잡고 가야 되겠다 그런 마음이 커서 맡았다. 책임을 가지고 끌고 가야겠다.”
-김용균씨가 떠난 지 10개월이 지났다.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 특조위)의 활동이 끝났는데, 아쉬운 점은 없으셨는지.
“벌써 세월이 10달이 지났다. 특조위 권고안은 정말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위원들이 무척 노력해서 715쪽에 달하는 책이 나왔다. 하지만 책을 읽자고 만든 것이 아니잖나.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이행이 돼야 잘되는 거다.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저희도 지켜보고 있는데, 아직은 달라진 것이 크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아쉽다. 용균이의 동료들은 정규직 전환 논의를 하고 있는데, 그것도 딱히 논의가 발전되지 않은 상황이라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는 많이 답답하다. 정부에서도 어떻게든 (일이) 되게끔 만들어주려고 하는 노력들도 안 보인다. 며칠 전에 용균이 동료들하고 저희가 여당 의원들을 찾아가 ‘해결하게끔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왔다. 권고안을 현장에서 얼마나 잘 이행할지가 관건이고 남은 숙제다.”
-김용균재단의 과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사람을 기리기 위한 재단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과 연대하고 협력해 ‘싸울 수 있는 조직’을 만들려고 한다. 사건이 터지면 한번 가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그 사람들(피해자)하고 손잡고, 여러 사람들과 연결시켜주고, 함께 힘을 보태려고 한다. 연대와 협력이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유가족들은 사고가 나면 놀란 상태라 누구도 믿지를 못한다. 저 또한 그랬다. ‘누가 나를 위해줄 것인가.’ 도와준다고 해도 믿음이 안 갔다. 또 다른 꿍꿍이가 있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상대가 또 다른 유가족이라면 다르다. 직접 경험해서 그 아픔을 알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 우리의 힘뿐 아니라, 함께 논의하고 협력해서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과제는.
“특조위 권고안이 나왔으니까, 실행하게끔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특히 ‘노무비 삭감’, 노동자에게 노무비가 삭감 없이 지급되도록 하는 문제다. 우리가 밀고 나가는 힘은 부족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하려 한다. (김용균씨 사고 뒤) 10달이 지났는데도 ‘2인1조 근무’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고, 550만원 받아야 할 급여를 220만원 받고 있는 상태다. (원청이) 노무비를 착복한 상태, 강제로 빼앗아간 상태여서 그것들을 빨리 정상화해야 하는데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전태일 열사를 먼저 보낸 이소선 어머니가 떠오른다.
“이소선 어머니를 잘 몰랐다. 그러다가 이 속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그분이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이시고 그래서 열심히 돌아가시기 전까지 열심히 이 길(노동자를 위한 길)로 가셔서, 많은 사람들한테 힘이 되어주셨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처럼 얼마나 잘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저 나름껏 열심히 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아들인 용균씨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제 동력은 우리 아들이다. 아들이 무엇을 원할까. 제가 울기만 하고 밥도 안 먹고, 그냥 힘들게 사는 삶을 원할까. 아니면 이렇게라도 나서서 무언가를 바꾸길 원할까. 제 마음속에 용균이가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를 통해서 아들이 원하는 것을 하길 바라고 있다. 우리 아들이 내 몸을 빌려서, 도구로 삼아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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