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중 출산한 자녀의 유전자검사 결과 남편과 혈연관계가 아님이 확인돼도 여전히 남편을 아이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까? 남편 동의를 받아 제3자의 정자로 인공수정을 하고 출산했다면 아이 아버지는 누구일까? 대법원은 두 경우 모두 법적으로 남편의 친자녀로 추정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김재형)는 23일 ㄱ씨가 자녀들을 상대로 “친자식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게 해달라”며 낸 소송(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각하)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무정자증인 ㄱ씨는 1985년 ㄴ씨와 결혼한 뒤 1993년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시험관 시술로 첫 자녀를 얻었고, 4년 뒤에는 ㄴ씨가 혼외관계로 둘째를 낳았다. 2015년 ㄱ씨와 ㄴ씨가 협의이혼하면서, 양육비 지급 책임이 있던 ㄱ씨는 “정자 제공에 동의한 적 없다” “둘째는 혼외자”라는 취지로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ㄱ
씨와 유전자검사 결과가 다른 둘째를 ㄱ씨의 친생자로 추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ㄱ씨는 둘째가 친자가 아님을 2008년께 알았는데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2년 안에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법(847조)은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2년 이내에 소송을 내야 이를 번복할 수 있도록 하는데, 대법원은 1983년 판례를 통해 부부가 별거한 상태에서 잉태돼 태어난 자식에 한해서 예외를 인정해왔다. ㄱ씨의 소송은 이 예외 범위를 넓혀달라는 취지였는데, 대법원은 이를 기각해 사실상 기존 판례를 바꾸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제3자의 정자를 활용한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첫 자녀도 ㄱ씨의 자녀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ㄱ씨의 경우와 같이 남편의 동의하에 인공수정이 이뤄졌다면 친자식 추정을 번복하는 소송을 낼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출생과 동시에 안정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자 한 친생추정 규정의 취지는 제3자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한 자녀에 대해서도 유지돼야 한다”며 “자녀의 복리를 책임지는 부모에게 이들 자녀와의 신분관계를 귀속시켜 부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법적 안정과 가정의 평화 등을 강조했다. 대법원은 “민법의 친생추정 규정은 혈연관계를 기준으로 적용 여부를 달리하지 않는다”며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사정만으로 친생추정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고 자녀의 법적 지위를 안정시키는 친생추정 규정 본래의 입법 취지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공개변론 당시 원고 쪽 참고인이었던 차선자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자녀의 신분관계 안정이라는 장점은 있지만, 혈연관계가 아닌 아버지의 법적 지위를 부인할 수 없도록 한다고 해서 자녀의 인권과 복지가 보장된다고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권순일·노정희·김상환 대법관은 별개 의견으로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음이 증명되고 사회적 친자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거나 파탄 난 경우에는 친생추정의 예외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