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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법원 “혼인 기간 출산한 ‘유전자 다른 자녀’도 법적 친자식”

등록 2019-10-23 17:34수정 2019-10-24 17:24

대법원 “혈연관계로 친자 관계 정하면 가정의 평화 깨질 우려”
친자식 아님을 안 날로부터 2년 안에 소 제기해야 부정 가능
타인 정자로 인공수정 출산해도 부부 동의했다면 친자식
대법원. 한겨레 자료 사진
대법원. 한겨레 자료 사진

혼인 기간 중 남편의 동의를 받아 제3자의 정자로 인공수정을 하고 출산했다면 이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혼인 중 출산한 자녀의 유전자 검사 결과 남편과 혈연관계가 아님이 확인됐더라도 여전히 남편을 아이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둘다 그 자녀를 남편의 법적 친자녀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 무정자증 남편, 타인정자 사용 인공수정과 혼외관계로 출산

대법원 전원 합의체(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김재형)는 23일 ㄱ씨가 자녀들을 상대로 “친자녀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게 해달라“며 낸 소송(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상고심에서 원고패소(각하)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무정자증인 ㄱ씨는 1985년 ㄴ씨와 결혼한 뒤 1993년 타인의 정자를 제공받아 시험관 시술로 첫째 자녀를 출산했다. 4년 뒤 ㄴ씨는 혼외관계로 ㄱ씨의 둘째 자녀를 출산했다. 네 가족은 함께 살다가 2015년 ㄱ씨와 ㄴ씨는 협의 이혼을 했다. 양육비를 지급할 책임이 있던 ㄱ씨는 “정자를 제공받는 것을 동의한 적 없다” “둘째는 혼외자” 등의 이유로 이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지난 5월 공개변론을 열어 법무부, 여가부 등의 의견을 수렴했다.

대법관 9명의 다수의견은 “친생자를 추정하는 규정의 기본적인 입법 취지와 연혁,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과 가족제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부부와 자녀의 법적 지위와 관련된 이익의 비교형량 등을 종합해 볼 때,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의 동의를 받아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출산한 경우 그 자녀를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하여 출산한 자녀라면,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남편의 자녀로 추정된다“고 짚었다.

■ 제3자 정자로 인공수정해 낳은 자녀도 남편의 자녀

대법원은 제3자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첫째 자녀는 ㄱ씨의 법적 친자녀로 봐야한다고 판단했다. 민법(844조)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만 했을 뿐 제3자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자녀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또 “출생과 동시에 안정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자 한 친생추정 규정의 취지는 이들 자녀에 대해서도 유지되어야 한다”며 “이들 자녀는 부부와 실질적인 친자관계 모습을 형성·유지하고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부부의 자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아내가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하는 과정에 보통 남편의 동의가 있고, 자녀의 복리 관점에서도 친생 추정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ㄱ씨와 유전자 검사 결과가 다른 둘째 자녀도 ㄱ씨의 친자녀로 추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ㄱ씨는 2008년께 둘째가 친자식이 아님을 알았으나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민법(847조)에 따르면 부부는 유전자 검사 결과와 같이 자녀가 친자가 아님을 안 날로부터 2년 안에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한다면 친자관계를 부정할 수 있다.

대법원은 유전자 검사 결과로 친자관계가 아님이 확인됐더라도 ㄱ씨처럼 2년 안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친자 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1983년 판례를 통해 친생 추정이 미치지 않는 예외 사유로 ‘‘동거하지 않아 아이를 임신할 수 없음이 명백한 때’만을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과학기술의 발달로 친부 확인이 용이해진 시대에도 ‘동거 여부’를 친자 확인의 근거로 삼는 36년 전 판결이 타당하냐는 질문에는 따로 답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대법원이 사실상 기존 판례를 유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유전자 검사 친생자 추정 예외 적용 안돼

대법원은 이같은 판단을 하면서 가정의 평화를 강조했다. 대법원은 “민법의 친생추정 규정은 혈연관계를 기준으로 적용 여부를 달리하지 않는다“며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사정만으로 친생추정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고 자녀의 법적 지위를 안정시키는 친생추정 규정 본래의 입법 취지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또 “혈연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자 관계를 정하면 친자 관련 소송이 제기되는 경우 친자 감정을 하거나 부부의 내밀한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단이 현실성이 낮다는 반론도 있다. 지난 5월 공개변론 당시 원고 쪽 참고인이었던 차선자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대법원 판단은 자녀의 신분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아버지의 법적 지위를 부인할 수 없도록 한다고 해서 자녀의 인권과 복지가 보장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권순일·노정희·김상환 대법관은 이와 관련해 별개의견으로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남편과 같지 않고 사회적 친자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파탄에 이르렀을 때는 친생 추정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앞서 이 사건 관련 1심은 과거 대법원 판례를 따라 두 자녀 모두 친생 추정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각하 판결을 했다. 2심은 둘째 자녀의 경우 친생 추정 예외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지만 십여년 동안 양육·보호한 양친자 관계가 인정된다며 소를 각하했다. 대법원은 2심 판단과 달리 유전자 검사 결과가 친생 추정의 예외 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재판의 결론이 같아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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