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오른쪽)이 2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계엄령 문건 원본,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 폭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옛 국군기무사령부가 계엄 시행준비 착수일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일 디(D)-2일로 구체화한 문건을 군인권센터가 21일 공개했다.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일인 2017년 3월10일 직전에 계엄을 실제로 준비한 구체적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2017년 촛불정국 당시 기무사 내란 음모와 관련한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을 공개했다. 임 소장이 “2017년 3월 기무사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의 원본“이라며 공개한 문건을 보면, ‘계엄 시행 준비착수: 탄핵심판 선고일 D-2일부터’라는 항목 아래 ‘국방부 계엄 준비 태스크포스(TF) 가동, ‘기무사 합동수사본부 운영 준비’ 등이라고 적혀 있다. 또 문건에선 ‘계획 완성’을 ‘3월3일’로 적고, ‘탄핵심판 선고일’까지 ‘시행준비 미비점 보완’·‘계엄(합수) 기구 설치 운영’ 등의 계획을 적시했다.
해당 문건은 계엄 선포 뒤 언론 통제 계획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2016년 기준) 한국기자협회에 등록된 매체:180여개 (기자 1만여명)’이라는 주석과 함께 제시된 통제방안에는 ‘보수 언론 대상 정부 입장 홍보 및 시위대 폭력성 부각 보도(문체부·방통위)’, ‘계엄사 보도검열단 편성 및 계엄선포시 소집 교육 준비(합참·문체부·방통위)’ 등의 내용 등이 담겼다.
기무사가 이 문건이 작성했을 때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었던 2017년 2월이다. 이 때문에 ‘기무사 계엄령 문건’ 작성 과정에 황 대표가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계엄 선포 계획이 당시 황 대표가 참가한 엔에스시(NSC·국가안전보장회의)까지 전달됐다는 것이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 선포 필요성을 다루는 부분에 ‘엔에스시를 중심으로 정부부처 내 군 개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라는 문구가 적시되어 있는데, 임 소장은 “시기상으로 황 대표 등 정부 주요 인사 간에 군 개입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오갔을 가능성을 충분히 의심해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황 대표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2016년 12월9일, 2017년 2월15일과 20일 등 세차례 엔에스시 회의를 주재했다. 임 소장은 지난해 민군 합동수사단이 황 대표에 대해 참고인 중지 처분을 내린 것을 두고 “(문건 등의 내용은) 그간의 공익 제보와 군사법원 재판 모니터링을 통해 파악한 것들이어서 합동수사단도 이미 이 내용을 모두 인지하고 자료도 확보하였을 것”이라며 “검찰의 수사 의지와 공정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이같은 주장에 바로 반박했다. 이창수 한국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임 소장의 기자회견을 언급하며 “현재 야당 대표가 연루되었을 정황이 보인다는 ‘아니면 말고’ 폭로성 회견으로 신뢰할 수 없는 내용에 불과하다”며 “황 대표가 수차례 언급한 대로 모두 허위 사실이다. 명백한 가짜뉴스다. 계엄령 논의에 관여한 바도 보고받은 바도 없다”고 밝혔다. 또 “정치적 사익을 위해 국가기밀을 악용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을 우습게 아는 일이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가짜뉴스 배포성 기자회견과 관련해 배후 세력은 없는지 낱낱이 살피고, 강력히 법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국방위 국감장에서도 문건의 진위를 놓고 공방이 일었다. 더불어민주당은 황 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촉구했고, 한국당은 명백한 가짜뉴스라고 맞섰다. 이 문건을 의원들에게 일괄 배포할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지면서 국감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임 소장이) 국가를 위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중요한 사실을 공개했다. 정부나 군, 검찰이 못한 일을 했다”라며 문건 공개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에 백승주 한국당 의원은 “야당 흠집내기 성격이 강하다. 유출 경로를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원들 간에 공방이 벌어지자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문건에 대한 보고받은 적이 없다. 오늘 인지가 됐다. 앞으로 (문건) 처리 방안을 검토하고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전광준 유강문 정유경 기자 l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