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노모어 누리집(pinknomore.org) 갈무리
5살, 4살 남매를 키우는 김신애(37)씨는 아이들이 노는 걸 볼 때마다 난감하다. 아들은 <헬로 카봇>에 나오는 로봇 장난감으로 딸에게 싸움을 걸기 일쑤고 딸은 요정 같은 여자아이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 <시크릿 쥬쥬>를 보며 스스로 ‘공주’라고 부른다. 김씨는 “‘공주’라는 말은 가족들은 아이에게 한번도 쓴 적이 없다. 아이들에게 ‘넌 남자니까’ ‘넌 여자니까’ 하는 말조차 조심하며 성역할 고정관념을 갖지 않게 노력해도 미디어 때문에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장난감을 살 때도 이런 성역할이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들 장난감의 주요 판매처인 대형 쇼핑몰들이 ‘여아용’과 ‘남아용’ 장난감을 구분 지어 팔고 있어서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지난달 국내 대형 온라인쇼핑몰 13곳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 가운데 7곳에서 장난감을 ‘남아용’과 ‘여아용’으로 구분 짓거나 소꿉놀이, 아이 돌보기 장난감에 ‘엄마놀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성차별적인 요소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결과를 보면, 장난감을 성별로 분류한 곳은 △신세계몰 △이마트몰 △트레이더스 △토이저러스 △홈플러스, 소꿉놀이 장난감에 ‘엄마놀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곳은 △네이버쇼핑 △신세계몰 △지에스샵 △토이저러스다. 김미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1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가사와 돌봄을 반영한 장난감에 ‘엄마놀이’라고 이름 붙이면 아이들에게 성역할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고 꼬집었다. 7개 쇼핑몰 가운데 지에스샵은 정치하는엄마들의 시정 요구를 받아들여 ‘엄마놀이’를 ‘엄마·아빠놀이’로 고친 상태다.
정치하는엄마들의 활약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각종 미디어 속 혐오·차별 콘텐츠를 수집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핑크노모어’(pinknomore.org) 프로젝트를 8개월째 이어왔다. 성차별적인 미디어들로부터 직접 아이들을 지키자는 취지의 활동이다.
지에스샵이 카테고리를 수정한 모습. 정치하는엄마들 제공
누리집엔 차별을 시정하려는 시민들의 다양한 제보가 쏟아진다. “초등학교 앞에서 받았다”는 한 제보자의 게시물엔 ‘사춘기 전 예쁜 여자로 만들어내는 엄마들의 특별한 비법’이라는 글이 적힌 체형 교정 학원 판촉물 사진이 올라와 있다. 글쓴이는 “왜 여아에게만 외모 가꾸기와 다이어트를 강조하는지, 왜 엄마에게 자식 외모를 관리하는 역할을 강요하는지 정말 의문”이라고 짚었다. <교육방송>(EBS)의 혐오·차별 콘텐츠는 채널 특성상 더 큰 문제다. 또 다른 제보자는 이비에스의 수학 강의 캐릭터를 지적하며 “남성 캐릭터와 비교할 때 여성 캐릭터만 지나치게 성적 대상화가 돼 있다”고 했다. 비례를 가르치는 수학 프로그램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너는 먹은 만큼 찐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었다.
강미정 활동가는 “많은 사람이 주변에서 다양한 차별과 혐오의 콘텐츠를 마주치고 불편해하지만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다”며 “집단지성의 힘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민들의 더 많은 제보와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