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규 기자
우리나라에서 입시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에는 관공서의 출근시간이 늦춰진다. 듣기시험을 보는 동안 비행기도 뜨지 못한다.
그러나 입시전쟁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대입 원서 접수 때 벌어지는 막판 눈치작전이다. 대학교 창구에서만 원서를 받던 시절에는 첩보요원으로 온 가족이 동원되기도 했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온라인으로만 원서를 접수하면서 눈치작전의 양상도 바뀌었다. 마감을 앞두고 원서접수 창구를 뛰어다니던 풍경은 컴퓨터 모니터 앞의 바쁜 손놀림으로 변했다.
이런 ‘손품 눈치작전’이 마침내 일을 냈다. 대입 정시모집 원서접수 마지막 날인 28일 막판까지 눈치를 보던 수험생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온라인 원서접수를 대행해주는 업체 사이트들이 잇따라 마비됐다. 인터넷 원서접수 마감시간인 낮 12시를 두 시간 앞둔 10시께부터 수험생들의 접속이 폭주하면서 서버가 다운된 것이다. 초유의 일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올해에는 서버를 두 배로 증설했는데도 눈치작전이 너무 심해 속수무책이었다”고 말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온종일 서버 다운에 항의하는 전화에 시달렸다. 그런데 교육부가 부랴부랴 원서접수 기간을 하루 연장해 줄 것을 대학들에 요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항의 전화의 내용이 바뀌었다. “나는 충분히 눈치를 볼 시간도 갖지 못하고 이미 원서를 냈는데 왜 접수 기간을 연장해 줬느냐”는 것이다. 경쟁자들에게 눈치작전을 펼 시간을 벌어준 것이 못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대학 입시에 ‘올인’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속살 그대로 볼 수 있었던 하루였다.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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