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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땀흘려 양식장 일궈놓은 어르신들에게 ‘마을연금’ 드립니다”

등록 2019-10-01 21:20수정 2019-10-01 21:24

[짬] 태안 만수동마을 전제능 어촌계장

전제능 만수동 어촌계장(가운데)과 주민들이 지난 20일 마을 양식장에서 캐낸 바지락을 보여주며 엄지척을 하고 있다. 사진 송인걸 기자
전제능 만수동 어촌계장(가운데)과 주민들이 지난 20일 마을 양식장에서 캐낸 바지락을 보여주며 엄지척을 하고 있다. 사진 송인걸 기자
“마을 어르신이나 사정 있어 일을 하지 못 한 이웃과 수익을 나눠도 내 소득은 늘어났어요. 그 덕분에 마을연금제가 정착했습니다.”

작은 어촌에서 3년째 마을연금제를 시행해 관심을 끈다. 안면도 최남단인 충남 태안군 고남면 영목항 근처의 만수동 마을이 그곳이다. 전체 가구 56호, 125명 주민 가운데 어촌계원은 96명(준계원 56명 포함), 바지락 양식과 꽃게잡이 등이 주 수입원이다.

지난 20일 만수동 현지에서 연금제를 첫 도입한 이 마을 전제능(58) 어촌계장을 만났다.

바지락 공동양식장 수익 30% ‘기금’
80살 이상·환자 등 20여명에 지급
“소득 줄면 자리 내놓겠다” 주민 설득

200년 대대로 살아온 마을 토박이
농사 짓던 간척지 수용된 뒤 어업 시작
2016년 “너밖에 없다” 어촌계 맡아

전 어촌계장은 “연금은 바지락양식장의 수익을 십시일반 적립한 기금에서 지급한다. 양식장은 마을 전용 양식장 31㏊와 인근 10개 마을이 함께 작업하는 공동양식장 120㏊ 등 두 곳인데, 공동양식장의 바지락 채취량 가운데 30%가 연금 기금”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어촌계의 결산보고서를 보면, 마을은 20여명에게 1인당 평균 300여만원의 연금을 지급했다. 연금 대상은 80살 이상 원로, 환자·장애인, 조업 참여 못 한 주민 등을 어촌계 대의원회에서 심의해 결정한다. 주민 한사람이 바지락을 캐서 벌어들인 평균 소득은 연 1800여만원이었다.

마을연금은 그가 어촌계장이 된 뒤 “어르신들과 젊은 주민 간 갈등을 줄이고, 소득은 높이며, 어르신과 아픈 이웃을 함께 돌보자”고 제안해 비롯됐다. “어르신들 기력이 예전만 못해 바지락을 잘 못 캐요. 양을 채우려다 보니 자잘한 바지락까지 캐는 바람에 제값을 못 받아요. 또 어르신들이 자기 대신 일할 외지인을 고용하니 수익의 상당수가 품삯으로 나갔어요.”

마을연금제를 도입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는 2016년 “갯벌을 나눠 휴식년제를 도입하고, 외지인을 고용하는 대신 주민들이 굵은 바지락만 골라 채취하면 수익이 나아질 것”이라며 “부모 세대가 젊었을 때부터 돌지게를 날라 지금 바지락양식장을 만들었으니 수익을 나누자”고 제안했으나 대의원회는 만장일치로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6개월 동안 시행해보고 개인 소득이 한 푼이라도 줄어들면 어촌계장직을 내놓고 마을연금제도 않겠다”라며 주민을 설득했다. 주민들은 그의 제안대로 해보고 소득이 늘자 비로소 연금제를 받아 들였다.

내친김에 그는 귀어민에게 어촌계 진입 장벽도 낮췄다. 젊은 주민 비율이 30% 정도를 유지해야 현재의 소득과 마을연금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마을에서 대를 이어 200여년째 살아온 토박이다. 1990년에는 안면도가 핵폐기물 처리장 후보에 오르자 반대 투쟁의 선봉에 섰다가 죽을 고비를 넘겼을 만큼 고향 사랑도 남다르다. 그러나 그는 어업을 하지 않고 논밭농사를 지었다. “농사 짓는 게 고기잡이보다 수입이 좋았어요. 부남호에서 간척지 임차한 땅까지 한 320마지기를 지었으니까요.”

그가 어민이 된 것은 불과 5년여 전인 2014년 6월30일이다. “너밖에는 어촌계장 할 놈이 없다. 우리가 투표해 널 뽑았다”며 주민들이 어촌계 장부를 떠맡긴 날이었다. 한국타이어의 주행시험장이 들어서면서 논밭이 수용되는 바람에 농사 지을 땅이 사라진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만수동 마을연금제의 성공 사례가 알려지면서, 인근 어촌계 6곳도 시행했거나 도입하기로 하는 등 화제가 됐다. 그러나 만수동이 풀어야 할 과제도 여전히 많다. 먼저 보령~안면도 연륙교 건설에 따른 환경 변화가 부담이다. 교각이 건설된 뒤 유속이 바뀌면서 4년 만에 바깥 바다의 공동양식장은 모래가 쌓여 면적이 4분의 1이 줄고, 안쪽 마을양식장에는 펄이 유입됐다. 여기에 더해 에이(A)형 간염을 유발하는 중국산 조개젓갈 파동과 주요 수출 상대국인 일본의 경제보복 사태로 수익도 줄었다.

“계륵 같은 연륙교이지만 다리에서 보이는 안면도 첫 동네가 만수동이죠. 주민이 살려면 바다를 활용한 관광 상품 등 새 수입원을 발굴해야 합니다.” 그의 이마에 주름이 짙어졌다. 대학 교수들과 마을 생산물인 바지락·굴로 먹거리를 개발해 보고, 바다체험장도 만들었지만 먹거리는 특정 계절에만 나고 숙박시설·화장실·다목적 회의장 등 기반 시설도 없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저온저장고 건립 사업이다. 양식장 수익으로 1억5천만원 정도 기금을 모은 뒤 국비 지원을 요청할 작정이다. “저온저장고를 지으면 만수동에서 생산한 싱싱한 바지락과 굴로 일년 내내 먹거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만수동 밥상’ 상표로 전국에 해산물을 판매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는 저온저장고가 건립되면 마을 살림 조금은 넉넉해 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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