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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직장갑질금지법 시행 2달…“피해자 보호장치 부족해 ‘2차 피해’ 발생” 지적

등록 2019-09-19 16:37수정 2019-09-19 19:37

갑질 확인돼도 후속조처는 사업주 재량
사업주가 가해자면 처벌 규정도 없어
근로감독관 정기조사 규정도 마련해야
19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주최로 ‘사례를 통해 본 직장내괴롭힘금지법의 의미와 개선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9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의 주최로 ‘사례를 통해 본 직장내괴롭힘금지법의 의미와 개선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5월 서울 종로구의 한 보험 중개업 회사에 입사한 박가연(가명)씨는 3개월 만에 해고를 당했다. 대표이사의 갑질을 신고한 데 따른 ‘보복 해고’였다.

지난달 박씨는 회사 복사기가 고장 나 대표에게 “수리기사를 부르겠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대표는 박씨에게 “왜 이렇게 늦게 보고하느냐”고 핀잔하더니 자신이 직접 복사기를 고치겠다고 나섰다. 끝내 고치지 못한 복사기 주변에 종이가 쌓여 박씨가 이를 치우려고 하자 대표는 “복사기 고장 증거로 모아놓은 종이를 왜 치우냐. 너는 참 이상하다. 사회생활 그렇게 배웠냐 이 새X야” 등과 같은 폭언을 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박씨가 연차를 쓰자 대표는 “다른 회사 면접을 보는 것이냐”며 “어차피 너는 면접을 봐도 떨어질 거다. 얼굴도 못생기고 키도 작고 영어도 못 하는데 어떻게 붙겠냐”고 말하며 웃었다.

참다못한 박씨는 지난달 14일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냈다. 그 이후 대표의 괴롭힘은 더 심해졌다. 대표는 “진정서라는 것은 퇴사하고 나서 하는 거지, 어떻게 재직 중에 할 생각을 하느냐”며 “너는 정신병자인 것 같다”고 폭언을 하더니 결국 지난달 28일 박씨에게 해고통지서를 건네며 “안 나가면 사람 불러서 끌어낸다”고 협박했다. 박씨는 “그날 회사에서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쫓겨났다”고 토로했다.

지난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2달이 지났지만 이 법에 피해자 보호 장치가 부족해 2차 피해가 양산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갑질 피해가 확인돼도 사용자가 이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할 의무가 없어 박씨 사례처럼 보복 조처 등을 막지 못하는 것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19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연 ‘사례를 통해 본 직장내괴롭힘금지법의 의미와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발제에 나선 이용우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징계나 근무 장소 변경 이외에 어떠한 조처를 할 것인지를 사용자 재량에 맡기고 있다”며 “(좌천성 인사나 보복 해고 등의) 불리한 처우 금지 의무 등이 이 법 안에 적극적으로 규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직장 상사가 아니라 사업주가 괴롭히는 경우에는 직접적인 처벌법이 없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직장인 ㄱ씨는 직장 갑질 피해를 당해 고용노동지청에 신고하려 했으나 고용노동지청 쪽에선 “사업주가 괴롭히는 경우에는 직접적인 처벌법이 없고, 사업주가 조사에 응하지 않아도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박성우 노무사는 “특히 박씨나 ㄱ씨 사례처럼 사업주가 괴롭히면 사업장 내에서 개선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조사 과정에서 대표이사가 출석 조사에 응하지 않더라도 강제할 방안이 없어 조사 자체가 부실해질 우려가 있고, 가해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고용노동청이 예방과 후속 조처를 권고하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사정이 반복된다면 결국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대해 개입할 동력을 찾지 못하게 될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인지조사와 신고조사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정기조사 등은 별도로 규정하지 않아 보복 조처가 없는지 후속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박 노무사는 “근로감독관이 괴롭힘 피해 사실 조사 뒤 시정 조처를 지시하면서 사건을 종결하지 말고 최소 6개월은 정기적으로 점검해서 보복은 없는지 등의 추가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며 “아울러 피해사실 확인 뒤 사업주가 근로감독관의 시정권고를 이행하지 않으면 사업장의 위법·부당한 노동조건 전반에 대한 사업장의 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 시행 이후 좀 더 은밀하게 가해지는 갑질을 막기 위해선 피해자의 갑질 입증 책임보다 근로감독관의 직권조사 권한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청소·경비 용역업체 태가비엠에서 파견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청소노동자로 근무하는 ㄴ씨는 자신이 ‘은밀한 갑질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ㄴ씨는 “폭언같이 눈에 보이는 갑질은 아니지만, 업체가 일부 노동자들에게 ‘유동직’이라는 이름을 붙여 청소할 공간을 매일 아침 지정해주면서 중환자실 등 일부러 힘든 곳만 골라 배치하는 등으로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는 갑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노무사는 이에 대해 “갑질의 입증 책임이 신고인에게 과도하게 전가되지 않도록 근로감독관의 적절한 직권조사가 행해지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연서 김혜윤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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