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대학생 주거권 보장을 위한 자취생 총궐기 기획단'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대학 입학 후 1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한 천기주(20)씨는 지난 2월부터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2층 침대와 책상 4개가 있는 비좁은 4인실 기숙사 방에서 생활하던 천씨는 자취생활을 준비하며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자취방을 알아보면서 그 기대는 깨졌다. 개강 직전에 방을 찾다 보니, 학교 근처 원룸·오피스텔은 다 차 있었고 남아 있는 방은 창문 하나 없는 9.9㎡(3평) 남짓의 고시원뿐이었다. 안전한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여성 대상 범죄에 불안감을 느낀 천씨는 시시티브이(CCTV)가 있는 집을 원했는데, 월세가 5~10만원가량 비쌌다. 결국 천씨는 학교에서 버스로 30분 떨어진 수유역 근처에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60만원인 오피스텔을 골랐다. 한 학기 70만원인 기숙사보다 비쌌을 뿐 아니라, 매달 수도세와 관리비 등 10여만원도 별도였다. 천씨는 “집이 46㎡(14평) 정도로, 일반 원룸보다 넓은 편이긴 하지만 주방이나 붙박이장, 책상 등을 빼면 실제 거주하는 면적은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며 “경남 사천 고향 집의 방만한 크기 집에서 생활하니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고 말했다.
천씨처럼 비싼 주거비를 내면서도 열악한 주거환경에 내몰린 대학생들이 “방 같은 집 말고, 집 같은 집에 살고 싶다”고 연대했다. 10일 성신여대·성공회대 총학생회와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 등 16개 학생회·학생단체는 ‘대학생 주거권 보장을 위한 자취생 총궐기 기획단’(기획단)을 출범했다. 기획단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대료 상한제 △최저주거기준 보장 △공공주택 확대를 요구하며 “정부가 자취생들의 주거문제를 공적으로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가 지난 5월부터 한 달간 서울지역 대학 자취생 34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자료를 보면, 자취생들은 생활비보다 비싼 주거비용을 지출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들은 월평균 생활비 44만2000원보다 더 많은 49만원을 주거비에 지출했지만, 주거면적은 최저 주거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응답자의 78.6%가 원룸에 거주했고, 22.6%는 국토교통부가 규정한 1인 최저주거기준 14㎡에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
자취방이 안전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응답자의 19%가 집에 소화기, 소화전, 스프링클러가 모두 없다고 답해, 화재 대처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주지가 외부인 침입으로부터 안전한 것 같냐’는 질문에는 9명이 ‘매우 불안전’하다고 답했고, 불안전하다고 답한 비율도 16.7%(57명)나 됐다.
고근형(22) 자취생 총궐기 기획단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주거비가 월 소득의 20%가 넘지 않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며 “정부가 학생들의 주거문제를 방치하지 말고, 공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민간임대주택에 공적 통제를 도입하고, 대학생 자취방 임대료를 월 15만원 이하로 규제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에 자취생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면담 요청서를 전달했다. 다음 달 5일 광화문광장에서는 ‘자취생 총궐기’를 열 예정이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