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20주년 기념식이 지난 3일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교육관에서 열렸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20주년 기념 준비위원회와 한겨레 경제사회연구원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기초법을 만드는데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인사 40여명이 참석했다. 신은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지금으로부터 20년전인 1999년 9월7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이 공포됐다. 이 법은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저생계비를 보장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시혜의 관점에서 이뤄지던 사회복지에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법적 권리라는 개념이 생기는 등 기초법 제정은 우리나라 복지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기초법이 만들어진 9월7일은 ‘사회복지의 날’로 지정됐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20주년 기념 준비위원회와 한겨레 경제사회연구원은 지난 3일 오후 서울 중구에 있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교육관에서 기초법 제정 당시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행사에는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홍신 전 한나라당 의원, 김성재 전 청와대 민정수석,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문진영 경기도일자리재단 대표이사(서강대 사회복지학 교수),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송경용 성공회 신부, 이종윤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회 위원장(전 복지부 차관), 진영곤 전 여성부 차관 등 시민사회, 학계, 정치권, 정부 등 20년전 기초법을 만드는데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인사 4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기초법 제정이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조금씩 영향력을 발휘해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회상했다. 1997년 외환위기에 따른 대량 실업으로 기존 생활보호법이 제 기능을 할 수 없어 새로운 복지 제도에 대한 요구가 크긴 했지만, 기초법 통과는 꿈도 꿀 수 없는 분위기였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 진영이 기초법 제정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은 물론, 복지부조차 ‘절대 기초법이 제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큰 소리쳤을 정도다. 국가에서 돈을 주면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와 막대한 재정 등 반대 의견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초법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당시 국회에서 기초법 제정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정세균 의원은 “의정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법이었다.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법”이라며 “다만 이 법이 실질적으로 탄생하기까지는 여러분들, 운동가분들, 사회복지에 일생을 건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국회는 열매만 딴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이면서 법 통과에 적극 나선 김홍신 전 의원(소설가)은 “우리당(한나라당)에서 반대가 심했다. 다행히 제가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저도 가장 잘한 일을 말하라면 기초법을 꼽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전 의원은 “원래 수많은 사람들이 과녁을 향해 활을 쏴야 명중이 되는 것인데, 이 법은 다수가 화살을 쏘고 과녁을 그렸던 것 같다. 여러분 때문에 대한민국이 행복해졌다”고 회상했다.
현재 복지부 수장인 박능후 장관은 20년 전엔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으로 기초법 제정에 힘을 보탰다. 박 장관은 당시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당시 (기초법 관련해) 기초 조사가 굉장히 중요했다. 재정 지원을 받았던 월드뱅크 사람과 복지부에 인사하러 찾아갔다. 복지부 담당자가 ‘이상한 법을 만들고 있는데, 이 법이 만들어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고함을 쳤다. 두달 뒤 다시 찾아갔는데 담당자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이 법을 꼭 성공시키겠다’고 하더라. 그 사이에 김대중 대통령이 ‘기초법을 제정하겠다’는 ‘울산 발언’이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출 수 밖에 없는 공무원들의 태도를 이해한다.”
박 장관도 언급했지만 기초법은 1999년 6월21일 김 대통령이 울산에서 ‘기초법을 제정하겠다’고 폭탄 발언을 한 것이 큰 변곡점이 됐다. ‘울산 발언’이라고 불리는데, 시민사회 진영조차 “의외였다”, “놀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에 대해 당시 김 대통령을 보좌관 김성재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김 대통령은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국민이 굶주리거나 아프면 안되고, 공부하고 싶은데 못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기초법은 시민사회 역할이 워낙 컸고, 울산에 가는데 대통령께 꼭 (기초법 제정을) 말해야 한다고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박원순 시장의 축사는 강병호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이 대독했다. 박 시장은 “참여연대 시절, ‘국민생활최저선 확보 운동’을 펼치며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안전망이라 할 수 있는 기초법을 성정했고 여러 단체들과 연대해 입법화했다. 제가 낳은 자식이나 다름없다”며 “20년 동안 우리 사회는 급속히 변했다. 기초법도 사회경제적 변화에 맞춰 바꿔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다음 일정이 있어 행사 중간에 자리를 옮겼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축사는 이한주 경기연구원장이 대독했다. 이 지사는 “송파 세모녀 등 국가에서 요구하는 빈곤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런 비극이 일어났다. 가난한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아직 너무 많다”며 “20주년을 맞아 공정한 사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기초법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냈다. 정세균 의원은 “기초법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수급자 선정 때 자식이나 부모, 부인, 남편 등의 재산이나 소득 기준을 적용하는 제도)이 맹점이다. 돈이 많이 들지만 사각지대가 생기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꼭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박능후 장관은 “내년에 제2차 ‘기초생활보장 3개년 계획(2021~2023년)’을 마련하는데,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은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eunjae.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