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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정규직 죽음 12점 감점, 하청노동자 죽음 4점 감점…“죽음도 차별”

등록 2019-08-19 18:15수정 2019-08-19 20:03

‘김용균 특조위’ 권영국 간사 인터뷰
발전사 경영평가서 원-하청 노동자 죽음 차별
“위험 구조화하는 원·하청의 위계구조 없애야”
고 김용균 노동자 특조위 간사로 4개월여간 조사를 진행한 권영국 변호사가 18일 오후 특조위 위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고 김용균 노동자 특조위 간사로 4개월여간 조사를 진행한 권영국 변호사가 18일 오후 특조위 위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발전 5사 내부 경영실적 평가 지표를 보면, 원청 노동자가 사망하면 공식에 따라 12를 곱해 감점하는데, 하청 노동자는 4를 곱해 평가점수를 깎습니다. 원·하청 노동자의 죽음을 차별하는 게 게 수치로도 나타나는 거예요. 아프죠? 대단히 아프죠.”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 간사로 지난 4개월간 조사 활동을 벌여온 권영국 변호사는 18일 <한겨레>와 만나 “원·하청 노동자에 대한 처우 차별은 결국 사람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에게 국민의 ‘평등권’을 보장한다는 헌법 제11조는 거짓말이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소속이라는 ‘신분’의 차별은 처우의 차별로만 끝나지 않았다. 하청 소속이라는 ‘꼬리표’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원청 정규직과의 차별을 합리화한다. 이 때문에 권 변호사는 ‘제2의 김용균’을 막기 위해선 하청 노동자에게 위험을 집중시키는 원·하청 간 위계 구조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특조위의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권 변호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이번 조사 결과에 만족하나.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특조위가 놓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는 고 김용균씨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발전소 민간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처우와 안전 문제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일하는 청소·경비 하청업체 직원들의 노동 조건이나 경쟁체제 도입 이후 발전사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강도 변화 등에 대한 조사가 빠진 점은 좀 아쉽다.

- 특조위 조사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공기업인 발전사는 정부기관이 감독을 하기 때문에 상급기관이 지시를 하면 협조를 했다. 하지만 특조위가 강제할 수 없는 민간 하청업체들의 경우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직원들에 대한 처우나 안전·기술분야 투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정산서 등의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일이 많았다.

- 현장 조사에서 만난 노동자 가운데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

=하청 노동자들이 왜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 설명해준 노동자가 있었다. 예를 들어, 현장에서 불이 나면 협력업체 직원이 원청에 바로 연락을 해 지시를 받는 게 아니라 현장 대리인이나 소장을 거쳐 보고를 하고, 다시 그 절차에 따라 지시가 내려온다. 하청 노동자들은 먼저 불을 끄다가 다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어?’라며 자칫 더 큰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고 김용균 노동자가 생전 자전거를 타는 모습.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제공
고 김용균 노동자가 생전 자전거를 타는 모습.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제공
-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하나.

=불법파견을 피하기 위해 원청은 협력업체 직원들과의 보고체계 형식을 굉장히 복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설비가 노후화하거나 설계가 잘못돼 위험이 발생할 경우 하청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설비를 원청의 지시 없이 개선할 권한이 아무 것도 없다. 설비는 하청업체가 소유한 게 아니라 발전회사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고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사고 원인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하청 노동자들은 자신에게 닥친 위험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 굉장히 무력감을 주는 이야기다.

=그 하청 노동자가 했던 말도 “우리 말의 힘이 주어지면 좋겠다”라는 거였다. 원-하청 구조는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일과 완전히 배치된다. 하청 노동자 대신 하청 노동자가 개선을 요구해 수용이 되면 좋을 텐데, 원-하청업체는 이미 수직적인 관계다. 하청은 원청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하청 노동자들의 요구는 무시되거나 반영되지 않는 거다.

- 그렇다면 원청의 직접고용이 해결책인 것인데 그게 가능할까.

=사업주가 지금처럼 원-하청으로 분리된 구조에선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없다. 발전소 하청 노동자들에 대해서 원청 사업주인 발전사들은 책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고 김용균씨가 일했던 한국발전기술에서 사람이 죽고 산재가 발생해도 원청인 서부발전은 안전대상을 받고, 산재 보험료도 수십억씩 감면받을 수 있었던 거다. 자신이 책임지지 않는데 돈을 들여 설비를 개선할 이유가 없다. 반대로, 하청업체 노동자는 자기 회사의 노동자가 개선을 요구할 때 ‘권한이 없다’며 원청에 책임을 전가한다. 원청과 하청이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책임 미루는 상황에서 ‘책임의 공백 상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2008년부터 10년간 발전소에서 일어난 산업재해의 95%가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발생했다. ‘발전소는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산재가 많이 발생한다’라고 말하는 건 틀렸다. 아무도 하청 노동자의 위험을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안전사고가 하청 노동자들에게 집중되는 구조인 것이다.

- 조사를 하며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나.

=처음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었는데… 고 김용균씨 어머니를 뵐 때 제일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조사를 마무리할 무렵에 김용균씨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진을 봤는데… ‘저 젊은 청년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죽었다. 본인이 어떤 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키는 대로 했던 가장 성실한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이 오버랩 되면서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어 지려면 위험을 구조화하고 증폭시키는 원-하청의 위계 구조를 없애야 한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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