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이 병원을 처음 찾은 어린이 환자를 심층진료하고 있다. 심층진료에서는 15분 동안 그동안의 병력과 검사 등에 대해 자세히 청취하고 청진 등 진료를 한다. 동네의원에서도 이런 심층진료가 가능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대병원 제공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병원에 환자들이 몰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단순한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자까지 대형병원으로 몰리면서 중환자들의 오랜 대기로 질환이 악화될 우려도 있다. 또 같은 병이라도 대형병원의 진료비가 더 많이 나와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커질 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에도 위협이 되며 결국 국민들의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촬영) 검사 등에 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등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한 ‘문재인 케어’를 위협할 여지도 있어 동네병원 강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현상은 진료비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의료기관 규모별 건강보험 진료비 점유율 자료를 보면 2005년 상급종합병원이 14%, 종합병원이 14.3%, 의원급은 26.8%였다. 10여년이 흐른 지난해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점유율은 각각 17.3%, 16.6%로 높아진 반면, 의원급은 19.6%로 낮아졌다. 건강보험에서 지출된 진료비가 낮아진 만큼 환자들이 의원급 동네병원을 상대적으로 적게 찾은 것이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같은 고혈압이라도 외래 진료비가 20% 이상 높은 상급종합병원 등 대형병원을 이용한다면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건강보험 재정도 악화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증 환자까지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보다 동네의원의 기능을 강화할 것을 주문한다. 그 대안으로 정부가 최근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의원급 만성질환 관리사업이 주목받고 있고, 나아가 환자의 평소 건강을 챙기는 주치의 제도 등이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 ♣?H4s의원급 만성질환 관리로 환자 만족도 높아져♣?] 인천에 사는 유아무개(80·여)씨는 지난해 가을부터 한 의원에서 고혈압과 당뇨를 관리하고 있다. 그는 벌써 20년째 고혈압·당뇨 치료를 위해 각종 병원을 전전했지만 지금 다니는 의원의 의사처럼 당뇨 관리를 자세히 설명해준 사람은 없었다. 유씨는 매일 아침 혈압과 혈당을 기록해뒀다 일주일에 한번씩 전화로 의사와 수치 등을 상담한다.
유씨는 “최근 혈압과 혈당 모두 정상 범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칭찬을 들어 기분이 좋다”며 “전에 다니던 병원에서는 ‘나이 들어서 뭘 그리 열심히 관리하느냐’는 말까지 들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에 한번 통화는 물론 한달에 한번 의원을 찾는데, 식단 관리나 운동 등에 대해 20분가량은 설명을 듣는다. 이렇게 상담 시간이 길지만 만성질환 관리사업 덕에 진료비는 매번 1500원 정도만 낸다. 진료 시간이 충분해 건강관리에 대한 통합적 조언도 듣는다. 유씨는 “유산소운동을 하라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주변 사람들과 줌바댄스, 요가, 스트레칭과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한다”며 “단것이나 제철 과일도 많이 먹지 말라고 해서 자제하는데 실천하기가 좀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은 참여하는 의료진에게도 호평을 받는다. 대한가정의학회 정책위원인 정명관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현재는 고혈압과 당뇨에 한정돼 있지만, 환자 상태를 포괄적으로 평가하고 상담 교육에도 상당한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 이 사업의 의의가 있다”며 “특히 검사와 시술(수술)이 아니더라도 질병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의료행위로 의원급 의료기관 운영이 가능하도록 첫발을 디딘 것”이라고 평가했다.
■ ♣?H4s고혈압·당뇨 환자 13만여명이 서비스 받아♣?]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 관리를 의원에서 지속적으로 받도록 하는 ‘일차의료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에는 지난 6월말 기준으로 전국 약 3만개 의원 중 2138곳이 참여해 환자 13만여명이 진료를 받고 있다. 주로 약 처방을 하는 기존의 의료서비스와 달리 간호사나 영양사를 고용하거나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식습관 및 운동 등에 대해 교육하고 상담하는 것이 차이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의사들은 환자 개인의 특성에 맞는 만성질환 관리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교육이나 상담 부분에 대해서도 별도의 비용을 받는다. 환자도 한 해 1만6천~2만3천원만 추가 부담하면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박소연 복지부 건강정책과 사무관은 “일차의료 만성질환 관리사업을 통해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시간이 2배쯤 증가했다”며 “혈압, 혈당 수치를 정상 범위로 유지하는 것은 물론 금연, 절주, 운동, 식사 조절 등과 같은 건강행동을 유도하는 효과도 나타난다”고 말했다. 동네병원 본연의 기능인 일상적·통합적 건강관리 서비스에 가까운 모델인 것이다.
실제 복지부가 2014년 1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시행한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 평가를 보면, 시범사업에 참여한 집단에서 금연에 성공한 비율이 50%로 의원을 이용한 경우보다 13.5% 높았다. 혈압이나 혈당 수치 조절 효과도 더 좋았고, 생활습관 개선은 물론 의사와 환자의 관계도 더 좋아졌다는 평가다.
■ ♣?H4s설명 시간 충분한 진료체계, 주치의 제도가 대안♣?] 심층진료는 초진 환자를 15분 동안 진료하면서 의사가 환자의 병력과 예전 검사 결과 등을 자세하게 들은 뒤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진료로 서울대병원 등 몇몇 대학병원에서 시범운영 중이다. 서울대병원이 2017년 10월부터 두 달 동안 심층진료를 받은 270여명과 일반 초진 진료를 받은 140여명(대조군)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심층진료군에서 진료 만족 점수가 10점 만점에 9.04점으로 나와 대조군의 7.65점에 견줘 크게 높았다. 의사의 설명 시간이 길어지면서 불필요한 검사나 약 처방은 오히려 줄어 환자들의 진료비도 절약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층진료 같은 체계가 의원급으로 확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진규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는 “설명 시간이 충분해 심층진료 만족도가 높았다”며 “의원에서도 심층진료와 같이 의사가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환자들과 교감할 수 있도록 설명 부분에 대한 진료비를 충분히 보상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도 “환자 교육, 전화와 이메일 상담 등으로 환자를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도록 환자관리료를 신설하고, 의사 왕진이나 방문간호 서비스에도 충분한 진료비를 책정해 동네의원 기능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프랑스 등 유럽처럼 주치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재호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환자들은 대형병원과 값비싼 검사를 선호하지만 사실 이는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상업화된 의료체계에 익숙해져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근본적으로 국민의 건강을 지켜내려면 환자의 입장에서 질병치료와 건강증진을 돕는 주치의 제도가 대안”이라고 말했다. 정명관 가정의학과 전문의도 “고혈압이나 당뇨 등 몇몇 질환에 대한 관리로는 한계가 있다”며 “주치의 제도를 도입해 환자의 건강을 전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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