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18일 오전 국정원의 해킹프로그램 구입 관련 내용이 포함된 유서를 남기고 숨진 국정원 임승교(45) 과장의 승용차가 발견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 야산 입구. 임 과장은 운전석에서 번개탄을 피워 숨진 채 발견됐다. 용인/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2015년 국가정보원의 해킹프로그램 아르시에스(RCS·Remote Control System)를 통한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 수사한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남재준 전 국정원장 등 피의자 전원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1일 <한겨레>가 입수한 서울중앙지검의 불기소이유서를 보면, 검찰은 지난 23일 통신비밀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된 피의자 29명 전원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검찰은 “국정원이 아르시에스를 활용해 내·외국인 213명을 대상으로 위법하게 정보를 수집한 것은 맞다”면서도 “아르시에스의 활용은 모두 국정원 국장급인 당시 기술개발부서장의 승인을 받아 이뤄진 일이므로 국장 위인 국정원장과 2·3차장, 기조실장은 아르시에스의 도입과 사용에 관여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법을 위반해 내·외국인의 정보를 수집하거나 통화를 감청한 혐의는 인정되지만, 그 책임은 국장급까지만 한정되고 윗선까지 미치진 않는다고 본 셈이다. 이런 판단으로 원세훈,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등 전직 국정원장들과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 목영만 전 국정원 기조실장, 허손구 나나테크 대표 등은 책임을 면하게 됐다.
그런데 검찰은 아르시에스의 활용을 승인한 사람이라고 명시한 당시 기술개발부서장도 다른 이유로 기소하지 않았다. 검찰은 “당시 기술개발부서 국장, 단장의 위치에 있었던 자들에 대해서는 범죄가 인정된다”면서도 “국정원은 아르시에스를 사용해 민간인을 사찰한 게 아니라 대북·대테러·대공활동을 한 것이며 그 외의 사유로 민간인을 사찰했다고 볼만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이 건으로 아르시에스 운영 실무자였던 임승교 과장이 사망했고 국정원이 더 이상 아르시에스를 사용하지 않는 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은 가벌성(어떤 처벌이 가해질 수 있는 특성)이 낮은 점 등을 고려해 당시 기술개발부서장을 입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국정원장 등 윗선은 아르시에스의 도입과 사용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입과 사용을 직접 승인한 기술개발부서장은 국익 목적의 활동이라는 이유 등으로 기소를 면한 셈이다.
조지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장은 “국익 목적은 매우 엄격하게 해석돼야 하는 요소”라며 “검찰의 불기소 결정은 정보기관의 특수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관행이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아르시에스는) 예산이 들어가는 감청장치인데 윗선 개입 없이 기술개발부서장이 활용을 승인했을지 의문스럽다”고 꼬집었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도 “국가안전보장이라는 국정원의 선의를 믿는다면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해킹프로그램 사용을 국정원의 선의에 맡길 일은 아니지 않으냐”라고 지적했다.
앞서 2012년 1월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이 제작한 해킹프로그램인 아르시에스를 구매해 모두 213명의 피시와 휴대전화를 ‘점거’하고 자료를 수집한 사실이 2015년 7월 이탈리아 해킹팀 내부자료 유출로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같은 달 17일 임 과장이 ‘빨간 마티즈’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17년 10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개혁발전위)는 조사 결과 국정원이 아르시에스로 민간인을 불법 사찰한 사실이 없는 것을 확인했고, 임 과장의 사인도 ‘자살’로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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