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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48년 전 캐나다로 입양된 안젤라 “친엄마에게 행복한 모습 보여주고 싶어”

등록 2019-07-10 15:17수정 2019-07-10 21:53

토론토한인회 ‘마더랜드 투어’로 한국 온 안젤라와 마이클
1971년 캐나다로 입양 간 안젤라는 첫 한국 방문
1979년 미국으로 입양된 마이클도 “친엄마 보고 싶다”
안젤라 메리 리-팩은 태어난 지 4달 만인 1969년 7월 전북 전주시에 있는 비사벌 고아원에서 발견됐다. 2살 때 캐나다로 입양된 안젤라는 지난달 4일 친모를 찾기 위해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했다. 안젤라가 한국에서 친모를 찾기 위해 만든 전단지에는 자신이 태어난 곳과 어린 시절 사진 등이 담겼다.
안젤라 메리 리-팩은 태어난 지 4달 만인 1969년 7월 전북 전주시에 있는 비사벌 고아원에서 발견됐다. 2살 때 캐나다로 입양된 안젤라는 지난달 4일 친모를 찾기 위해 처음으로 한국에 방문했다. 안젤라가 한국에서 친모를 찾기 위해 만든 전단지에는 자신이 태어난 곳과 어린 시절 사진 등이 담겼다.
‘이름 김한숙. 1969년 3월15일생. 본적 미상. 출생지 미상.’

안젤라 메리 리 팩(Angela Mary Lee-Pack·50)은 태어난 지 4개월 만인 1969년 7월 전북 전주시에 있는 비사벌 고아원에서 발견됐다. 2년 뒤 안젤라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군인 가정에 입양됐다. 양아버지와는 달리 안젤라의 양어머니는 안젤라를 ‘뚱뚱한 한국인 아기’라는 이유로 미워했다. 양어머니는 갓난아기인 안젤라를 굶기고, 옷장에 가두기도 했다. 양아버지가 와야만 밥을 줬다. 학대는 3년 동안 지속됐다. 캐나다의 한 어린이 복지 단체가 안젤라의 사연을 알게 됐고, 안젤라는 복지 단체의 보살핌을 받았다.

안젤라는 7살이던 1976년 2월 다른 가족에 재입양됐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안젤라는 15살 때 두 번째 가족의 품에서도 떠났다. 안젤라는 두 번의 입양을 거치면서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떻게 태어난 것일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했다.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가족의 사랑에 결핍을 느꼈던 안젤라는 마음의 상처가 컸다. 상처투성이였던 그때의 안젤라는 엄마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50살이 되면 엄마를 만나러 한국에 갈 거야.” 평소 그렇게 말해오던 안젤라는 지난해 1월 친엄마를 찾으러 한국에 가겠다고 남편에게 선언했다. 법무사가 된 뒤 남편과 행복하게,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모습을 한국의 친엄마에게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을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 4일 안젤라는 남편과 함께 한국에 왔다.

친엄마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어린 시절 사진과 지금의 사진, 그리고 태어난 지역뿐이다. 안젤라는 이 정보를 모두 적은 전단을 만들어 돌리기로 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적어도 에이포(A4)용지 반쪽밖에 되지 않았다. 전단 몇장을 인쇄해왔냐는 질문에 안젤라는 “셀 수 없이 많이요. 보이는 모든 한국인에게 이 전단을 보여줬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이클 티엘먼(Michael Thielmann·42)의 한국 이름은 안동혁. 1977년 9월7일생이다. 입양 당시 마이클의 모습이 담긴 유일한 사진.
마이클 티엘먼(Michael Thielmann·42)의 한국 이름은 안동혁. 1977년 9월7일생이다. 입양 당시 마이클의 모습이 담긴 유일한 사진.
미국으로 입양된 마이클 티엘먼(Michael Thielmann·42)은 안젤라처럼 A4용지 반쪽짜리 전단조차 만들 수 없다. 어린 시절 정보가 안젤라보다 더 없기 때문이다. ‘이름 안동혁. 1977년 9월7일생. 출생지 미상. 발견장소 경북 안동시’가 전부인데, 이름과 생년월일도 모두 추정이다. 출신 고아원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생후 15개월께 안동시청으로 보내졌다가 대구에 있는 대한사회복지회로 갔다. 그러다 1979년 미국으로 입양됐다.

2006년 한국인 아내를 만난 뒤 마이클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 안동시청을 통해 수소문했지만 입양 당시 대한사회복지회로부터 받은 자료 외의 새로운 정보는 없었다. 입양 당시 사진이라곤 흐릿한 흑백사진 한장뿐이다.

한국에서 태어나자마자 입양된 안젤라(왼쪽)와 마이클(오른쪽)은 캐나다 토론토의 한 문화센터에서 1년 넘게 한국어를 함께 배우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청역 인근에서 <한겨레>와 만난 두 사람이 활짝 웃고 있다. 오연서 기자.
한국에서 태어나자마자 입양된 안젤라(왼쪽)와 마이클(오른쪽)은 캐나다 토론토의 한 문화센터에서 1년 넘게 한국어를 함께 배우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청역 인근에서 <한겨레>와 만난 두 사람이 활짝 웃고 있다. 오연서 기자.
안젤라와 마이클은 캐나다 토론토의 한 문화센터에서 1년 넘게 한국어를 함께 배우고 있다. 그러다 토론토한인회(KCCA·Korean Canadian Cultural Association)에서 한인 입양인을 대상으로 매년 진행하는 ‘마더랜드 투어(Motherland Tour)’에 참가해 지난달 한국에 왔다. 캐나다로 입양된 한국인들에게 모국을 여행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안젤라가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간 곳은 전북지방경찰청이다. 친엄마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그곳에도 9년 전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받은 입양 당시 안젤라의 상태에 대한 정보 외의 새로운 정보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소득이 있었다. 전주시청으로부터 받은 ‘아동신상카드’에는 안젤라가 입양 전 갓난아기 때 찍은 사진이 붙어 있었다. 아동신상카드는 안젤라가 전주의 고아원에서 홀트아동복지회로 이동할 때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흐릿한 흑백사진이지만 안젤라가 태어난 당시를 담은 유일한 사진이다. “입양되기 전 찍은 사진은 그동안 한 번도 못 봤어요. 이 사진을 보고 내가 태어났을 때 이렇게 생겼었다는 걸 알고 매우 신기했습니다.”(안젤라)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안젤라가 전주시청으로부터 받은 ‘아동신상카드’에는 안젤라가 입양 전 갓난아기 때 찍은 사진이 붙어 있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안젤라가 전주시청으로부터 받은 ‘아동신상카드’에는 안젤라가 입양 전 갓난아기 때 찍은 사진이 붙어 있다.
안젤라가 엄마를 찾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던 건 남편의 지지 덕분이었다. 중국계 남편인 스콧 리-팩(Scott Lee-Pack)은 안젤라의 마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친부모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안젤라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2번의 입양과 끔찍했던 아동학대 등으로 정서가 불안했던 23살 때, 안젤라는 운전을 하다가 대형 주유 트럭 밑에 깔리는 사고를 당해 이틀 동안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남편은 주변의 한인 입양인들을 찾아 연락했고, 한국인을 만나면 안젤라의 한국 이름과 발견된 지역 등을 말하며 친엄마 찾는 일에 자기 일처럼 나섰다.

마이클은 2017년 9월 처음 한국에 방문했다. “제 인생 대부분이 어딘가에 속해있단 느낌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니 저와 비슷하게 생긴 한국인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지구 반대편인 땅에서 저 혼자 왔는데도 낯설거나 불안하지 않고, 평온하고 안정적인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이클의 말이다.

마이클과 아내는 2017년 아이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 외할머니, 어머니, 누나가 모두 입양 출신인 이른바 ‘입양가족’에서 성장한 마이클은 “저는 저를 받아준 가정에서 아주 행복하게 자랐어요. 저와 같은 아이를 입양해서 이런 행복한 가정을 물려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2006년에 이미 엄마를 찾기가 힘들 거라는 걸 깨닫고 한 차례 실망하고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아이에게 이 실망감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었다는 불안감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어요.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도 괜찮은 아빠가 되고 싶어서 한국을 찾게 됐습니다.”

마이클은 그해 겨울 서울지방경찰청에 가서 유전자(DNA) 검사도 했다. 안동시청에도 가봤지만 입양 당시 받은 자료 외에 다른 정보는 없었다. 이마저도 마이클이 미국으로 입양되기 전 마이클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기록한 사회복지사의 3장짜리 글이다. “안동시청으로 옮겨진 1978년 12월 이전에 저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기록에는 15개월 정도에 어머니가 고아원 앞에 절 두고 갔다고 하는데 그 여성이 엄마인지도 확실치 않아요.”

1971년 캐나다 입양 당시 안젤라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
1971년 캐나다 입양 당시 안젤라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
안젤라와 마이클은 이번 달에 토론토로 돌아간다. 두 사람 다 가지고 있는 정보가 워낙 제한적이고 정확하지 않다 보니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친엄마를 찾기란 어렵겠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이번 한국 방문이 ‘실패’나 ‘절망’은 아니라고 했다. “한국은 제가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이곳에 있는 동안 백인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됐죠. 마음의 안정감을 찾은 날들이었습니다.” (마이클) “이번에 한국에 4주 동안 있으면서 저 자신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아가게 됐습니다. 그동안 제가 해왔던 행동들의 이유를 찾았죠. 그중 하나가 제가 평생 영어의 ‘아르(r)’ 발음이 어려웠는데, 한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그 발음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안젤라가 웃으며 말했다.

“만약 엄마를 만난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에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했다. 어렵게 입을 뗀 안젤라는 “엄마를 보면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아직 모르겠어요. 그 당시 엄마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이해하고, 묻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알고 싶은 건, 내가 언제,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를 알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마이클은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엄마가 저를 만나고 싶지 않으셔도 전 괜찮습니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는 말을 전해주는 게 제일 큰 소망”이라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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