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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주차장서 미끄러진 차에 숨진 아들…“‘하준이법’ 통과시켜 달라” 엄마의 싸움

등록 2019-07-09 17:21수정 2019-07-09 21:15

경사진 주차장서 미끄러진 SUV 차량에
4살 아들 ‘하준이’ 머리 부딪혀 숨져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됐지만 ‘범칙금 4만원’ 수준
“생명과 바꾼 기회” 고유미씨 ‘하준이법’ 통과 호소
9일 국회 정론관 앞에서 고유미(37)씨가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9일 국회 정론관 앞에서 고유미(37)씨가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지 2년이 다 돼 가지만 고유미(37)씨는 여전히 아들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고씨의 아들 ‘하준이’는 경사진 주차장에서 미끄러진 차량에 부딪쳐 세상을 떠났다. 2019년 7월9일 고씨는 오늘도 아들의 이름인 ‘하준’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제2하준이법, 경사면 주차차량의 미끄럼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

2017년 10월1일. 고씨 가족은 경기도 과천 서울랜드로 가기 위해 경남 창원의 집에서 출발했다. 고씨와 고씨의 남편, 4살 최하준 군과 2살 딸, 그리고 고씨의 뱃속에 6개월 된 막내가 함께 였다. 개장 시간에 맞춘 9시30분 서울랜드 동문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이가 둘이나 있었기 때문에 고씨 부부는 가장 안전해보이는 가장자리에 주차를 했다. 양 옆에 다른 차들은 없었고, 차가 잘 지나다니지 않는 가장자리였다.

차에서 내린 고씨는 하준 군의 손을 꼭 잡고 남편이 카메라를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씨는 항상 아들의 손을 잡고 다녔다. 순간 뒤에서 뭔가 고씨를 가격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수레가 미끌어져 온 줄 알았다. 뒤를 돌아보니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었다. 차 안에는 운전자가 없었다. 운전자는 차를 주차하면서 변속기 기어를 주차(P)가 아닌 드라이브(D)에 두고 내렸고, 경사면을 따라 미끌어진 차가 고씨를 친 것이다. 고씨가 정신을 차렸을 때 하준 군은 이미 쓰러진 상태였다. 차량 범퍼 위치가 딱 하준이 머리 높이였다. 구급차에서 첫번째 심정지가 왔고, 응급실에서 두번째 심정지가 왔다. 두번째 심정지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하준 군은 세상을 떠났다. 이후 고씨는 하준 군을 덮친 차량이 바로 뒤에서 온 게 아니라 주차장을 가로질러 내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씨는 “그때 안전요원이 호루라기라도 불었더라면 하준이는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씨는 사고 뒤 한달은 누워 있었다. 고씨가 일어난 건, 하준 군을 쉬게 할 납골당에도 하준이와 비슷한 피해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경기 용인시 한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제동장치가 풀려 내려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치여 숨진 이해인양(당시 4살)이었다. 고씨는 “그때 이런 지옥이 다시는 반복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9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고씨가 사망한 아들의 사진을 보고 있다.
9일 서울 영등포구 한 카페에서 고씨가 사망한 아들의 사진을 보고 있다.
하준 군을 보내고 한 달 두인 그해 11월6일, 고씨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경사진 주차장에 경고 문구 의무화와 자동차 보조제동장치 의무화를 요청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시민 14만6000여명이 동의했다. 정치권의 법안 발의도 잇따랐다.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차장 소유자에게 경사진 곳에 주의 표지판 설치를 의무화하는 주차장법 개정안 이른바 ‘하준이법’을 발의했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운전자의 고임목 설치 의무를 강조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진 게 없었다. 하준이법은 1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지난해 9월부터 ‘경사진 곳에 정차하거나 주차하려는 자동차의 운전자는 고임목을 설치하거나 핸들을 도로의 가장자리 방향으로 돌려놓는 등 미끄럼 사고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는 도로교통법 제34조3항이 신설돼 시행됐지만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범칙금도 4만원 수준이었다.

사고 현장인 서울랜드 동문 주차장도 바뀐 게 없었다. 올해 2월 서울랜드 동문 주차장을 찾은 고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1시간을 울었다. 고씨는 “최소한의 변화라도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다시 가본 주차장에는 오천평 면적에 플래카드 몇 개 걸린 게 다였다. 고임목이 어디 있냐고 물으니 ‘서울랜드 안에서 판다’는 황당한 답이 돌아왔다. 누가 서울랜드 안에서 고임목을 사서 주차장으로 되돌아와 두고 가겠냐”며 “축제나 행사에는 몇 억씩 쓰면서,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어떤 의지도 없는 걸 확인했다. 용서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9일 국회 정론관에서 고씨와 이용호 무소속 국회의원, 단체 정치하는엄마들 회원들이  ‘제2하준이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9일 국회 정론관에서 고씨와 이용호 무소속 국회의원, 단체 정치하는엄마들 회원들이 ‘제2하준이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고씨는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 지난 4일 “안전관리를 소홀히 한 서울시도 책임이 있다”며 서울시를 상대로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제2 하준이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첫번째 하준이법과 달리 ‘제2 하준이법’은 고임목 안내 설치를 의무화하고, 처벌도 6개월 미만의 영업정지 또는 300만원 미만의 과징금으로 강화했다. 이용호 무소속 의원이 8일 대표발의했고, 법안을 만드는 데 고씨가 직접 참여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씨는 “이제껏 지키지 못한 하준이와의 약속 때문에 이 자리에 섰다. 주차장에서 주차된 차도 피해가며 살아야되는데 누가 이 사회가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나. ‘제2하준이법’ 통과를 꼭 부탁드린다. 하준이의 생명과 바꾼 기회다”라고 울먹였다.

고씨는 기자회견이 끝난 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사고 이후 창원에서 경기로 이사했다. 창원은 하준이 그 자체라서 생활이 불가능했다. 이제 운전도 포기했다. 조수석에만 앉아도 불안이 심하다. 가만히 있어도 차가 달려들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살아야 한다. 남은 애들을 위해서라도.”

글·사진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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