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와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6일 ‘사법농단 정보공개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주제로 긴급좌담회를 열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문건은) 의혹별로 그 내용이 조사보고서에 상세하게 인용되어 있다. 이러한 사정은 이와 중복되거나 업데이트된 84개 파일에도 공통되는바, 이로써 국민의 알 권리는 충분히 충족되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문건 중 일부는)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이 없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재판의 독립, 법관의 독립 또는 법관들의 기본권 침해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항에 관한 것일 뿐이어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할 필요가 크다고 판단되지 않는다.”
참여연대가 법원행정처에 공개를 요구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조사 문건에 대해 지난달 13일 서울고법 행정3부(재판장 문용선)가 1심 판결을 뒤집고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하면서 밝힌 사유다. 참여연대는 26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국회에서 ‘사법 농단 정보공개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제목의 좌담회를 열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건 비공개 취소소송 항소심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짚고,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하고 해당 문건 공개를 위해 소송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진임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소장은 좌담회에서 “항소심 판결문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이로써 국민의 알 권리는 충분히 충족되었다’는 문구였다. 마치 ‘알 권리 감별사’가 나타난 것 같았다”고 밝혔다. 정 소장은 이어 “알 권리는 그 자체로 충족되거나 완결되는 것이 아니며 얼마만큼 충족됐는지 측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항소심 재판부는) 비공개한 문서 내용을 비춰볼 때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할 필요가 크다고 판단되지 않는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알 권리에 대해 무지한 것을 넘어서 오만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정 소장은 아울러 “‘(해당 문건을) 공개할 경우 조사 대상자가 부담을 느껴 자료 제출이나 협조를 꺼리게 될 것’이라는 (항소심 재판부의) 말은 재판부가 스스로 사법 농단 사건을 성찰하고 해결할 도덕성과 의지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참여연대의 소송 대리를 맡은 이용우 변호사도 같은 부분을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문건을 공개하면 나중에 공무원들이 내부 검토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견을 활발히 표현하는 데 제약받지 않겠냐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사법 농단 사건은 그야말로 문제가 되는 내부 검토와 의사결정 과정이었다. 이런 것조차 자유롭고 활발한 내부 과정을 보장해야 된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사법 농단 사건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 사법행정 참여, 국정의 투명성 등의 이익을 (항소심 재판부가) 지나치게 평가절하했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법 농단 티에프(TF)의 전정환 변호사도 “자유로운 의사 개진이 우려된다는 건 뻔하다. 그때 일은 일어나선 안 되는 의사결정이어서 시민이 알게 되는 게 부끄럽다는 취지”라며 “문건 비공개가 정당하다면, 그때와 비슷한 의사결정을 지금도 하고 있느냐고, 찔리는 게 있느냐고 물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인 양홍석 변호사는 법원의 ‘셀프 판결’도 문제 삼았다. 양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법원의 결정을 법원이 판단하는 시스템을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고 사법부의 정보비공개에 대해 행정부나 국회가 판단하게 되면 사법의 독립 침해가 된다”고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양 변호사는 “그나마 현실적으로 재판부들은 법원행정처와 유관함을 ‘의심스러울 때는 법원행정처의 불이익으로’ 풀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특히 여론의 관심을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이미 정보 자체는 상당 부분 공개됐다. 이번 소송을 통해 법원행정처를 비롯한 사법부에 부담을 줘 자성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소송 자체보다 사회적 여론 환기가 훨씬 중요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5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조단)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있는 문건 410건을 조사한 뒤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특조단은 조사보고서에 문건을 3개만 인용했고, 이 가운데 2건은 부분 공개에 그쳤다. 이에 같은 해 6월1일 참여연대는 “사건 보고서 별지에 기재된 문건 목록 중 D등급(암호가 미확인됐거나 손상된 파일들) 6건을 제외한 나머지 문건 404건을 공개하라”며 정보공개청구를 냈다. 같은 해 6월11일 법원행정처장은 참여연대가 제기한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해당 내용은) 감사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 처분을 결정했다. 이에 참여연대는 서울행정법원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건 비공개 취소소송’을 냈고, 지난 2월15일 1심에서는 승소했으나 지난달 13일 항소심에서는 패소했다. 항소심 재판장인 문용선 부장판사는 검찰이 사법 농단에 연루됐다며 법원에 통보한 비위 법관 66명 가운데 한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사진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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