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서 의자 없이 서서 일하는 계산원 노동자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롯데마트지부 제공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계산원 등 여성 노동자들이 마트 내 의자 비치를 의무화하는 법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루 평균 6.5시간 동안 서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은 2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마트 노동자 근골격계 질환 현황과 개선을 위한 방향찾기’ 토론회를 열고 지난 5월 한달 동안 대형마트 노동자 5천여명을 대상으로 근골격계 질환 위험 요인 노출 특성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대형마트에는 여전히 여성 노동자의 수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가 2개 대형마트에 배부해 수거한 설문지 5177부 가운데 여성 응답자가 4999명으로 97%나 됐다. 50대 이상 노동자(65.7%)는 절반 이상이었다. 마트 노동자들은 매장과 후방작업(상품을 매장 및 창고에 진열하는 일), 계산과 사무작업 등에 종사했다.
대형마트에서 의자 없이 서서 일하는 계산원 노동자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롯데마트지부 제공
조사 결과, 설문에 응한 마트 노동자들이 하루 동안 서서 일하는 시간은 평균 6.5시간으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자의 79%는 하루에 서 있는 시간이 하루 6시간 이상인 것으로 분석됐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9.7%)은 휴식시간도 없이 3시간 이상 서서 일한다고 답했다.
마트 노동자들은 이렇게 오랜 시간 서서 일하면서도 앉을 의자가 부족했다. 조사 결과, 대형 마트의 의자 보급률은 44.7%였다. 계산원 노동자들의 경우 대부분(98.2%)에게 의자가 보급됐지만, 매장 직원에게 의자가 보급된 비율은 19.9%에 불과했다. 게다가 계산원 노동자 등은 의자가 있어도 앉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설문에 참여한 계산원의 21.1%는 “앉을 수는 있지만 의자가 너무 불편해서 앉지 않는다”고 답했다. 조사를 진행한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그나마 있는 의자도 사실상 쓸 수 없는 현실”이라며 “현재 계산원들에게 제공된 의자는 작업공간이 제한돼 있어 의자의 높이가 너무 높거나 낮고, 등받이가 없으며 발 받침대가 없어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고객의 눈치가 보여 의자에 앉지 못한다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계산원 노동자의 51%는 “고객이 없을 때 앉을 수 있다”고 답했다. 매장(42.4%)과 후방 작업자(37.7%)의 대부분은 ‘바빠서 거의 앉지 못한다’고 답했다.
“계산할 때 고객과 카트가 가는 길이 다른데, 계산원이 카트를 옮겨야 하기 때문에 앉아서 일할 수가 없어요. 고객들께 영수증을 출력해줄 때도 앉아서 일할 수가 없죠. 창고형 할인매장이다 보니 대용량 세제, 물 등 무거운 물건들이 많은 편인데 이 때문에 팔이 잘 안 올라가는 증상이 있습니다. 요즘은 목 디스크 초기 증상으로 병원 치료도 받고, 진통제와 파스를 항상 갖고 다녀요.”
“마트에서 계산원이 앉아서 계산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나요? 대부분의 고객들은 싫어합니다. 서비스를 못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손님의 카드를 받아 단말기에 넣는 것도 우리의 일입니다. 의자가 있어도 앉아서 일할 수가 없는 현실입니다.” -롯데마트에서 4년5개월 동안 계산원으로 일했다는 최송자(53)씨
2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의 주최로 ‘마트 노동자 근골격계 질환 현황과 개선을 위한 방향찾기’ 토론회가 열렸다. 오연서 기자
노동자를 위한 마트 내 의자 비치는 법령으로 규정되어 있다. 2011년 7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관한규칙 제80조(의자의 비치)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때는 의자를 비치하도록 사업주에게 의무를 부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자의 관리감독 의무가 없는 자율규정으로 지키지 않았을 때 처벌 조항이 없다. 이 소장은 “이 규칙에는 의자의 규격과 의자 배치 장소 등 기준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용하기에도 불편한 의자를 아무 데나 갖다놓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며 “의자를 제공할 때는 의자에 앉아 있게 되면 관리자로부터는 ‘게으르다’는 인식을, 그리고 고객으로부터는 ‘건방지다’는 인식을 받을 수 있는 심적 부담이 있기 때문에 의자를 제공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의자가 제공되었을 때 앉을 수 있는 주변 여건과 인식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혜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법률원 변호사는 “현행법상 마트 내 의자를 비치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는 있지만 사실상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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