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코레일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승강장 스크린도어 정비 업무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2017년 7월20일. 이아무개(34)씨의 운명은 이날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이씨는 코레일이 관리하는 서울역과 금천구청역 사이 등 서울 지하철 1호선 일부 구간과 분당선, 경의중앙선과 경춘선, 공항철도 등의 역사에 있는 스크린도어(PSD)를 유지·보수하는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 중 한 명이다. 3년 전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사망한 ‘구의역 김군’과 같은 일이다. 하지만 김군처럼 이씨 역시 용역업체 소속이다. 그리고 오는 30일, 코레일과 이씨가 속한 용역업체 간의 계약이 만료되면 이씨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2017년 7월20일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화’를 선언하면서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시점이다. 정부 가이드라인에는 ‘가이드라인 발표 시점(7월20일)에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전환 채용 대상자에 해당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코레일은 2017년 7월20일 이전부터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를 하고 있는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 91명을 올해 초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근무 경력 5년을 기준으로 그 이하면 3년, 그 이상이면 2년의 유예기간 뒤 일반직 6급 직원으로 인정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코레일이 2017년 7월20일 ‘생명·안전 업무는 정규직 전환을 원칙으로 한다’는 정부 방침 발표 이후에도 여전히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에 용역업체 노동자들을 투입했다는 점이다. 철도승강장안전문 노동조합 관계자는 “지난해 2월부터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신규 역사가 늘어나면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를 맡아야 하는 노동자 수가 대폭 늘었다”며 “코레일은 이 인력을 여전히 용역직으로 채용해 왔다”고 말했다. 이씨를 비롯해 201명이 이때 이후 계약해 업무를 해온 이들이다.
코레일은 오는 30일 계약이 만료되는 201명의 일자리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미 지난 3월12일 정규직 173명 신규채용 공고를 내고, 직원을 뽑았다. 이들은 오는 27일부터 현장에 투입된다. 노조 관계자는 “정부의 가이드라인 취지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고용안정을 유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건데, 원래 있던 사람을 빼내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워 넣는 게 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공공기관이 입맛대로 가이드라인을 해석해서 고용을 더 불안정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노조는 애초 코레일이 201명을 기간제로 직접 고용하기로 약속해놓고 번복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코레일 인재경영실에서 작성된 ‘용역근로자 직고용 관련 채용 업무 매뉴얼’을 보면, ‘2017년 7월20일 이후 용역업체에 입사한 근로자는 기간제 전환채용을 한다’고 적혀 있다. 코레일 쪽은 지난해 11월27일 용역업체에 “정규직 전환 관련 조사를 부탁한다”며 직원들의 근무복 치수를 물어보는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계약 해지 위기에 처한 201명 중 한 명인 권아무개(41)씨는 “코레일이 필요하다고 한 인원을 용역업체가 뽑은 건데, 지금 필요없다고 판단하고 버리는 건 인권 침해다. 정규직화라는 게 기존에 일하던 사람 몰아내고 신규로 뽑아내는 건 아니지 않으냐”라며 “200만원도 안 되는 월급에도 우리가 큰소리치지 않고 참았던 건 조만간 코레일 정규직원이 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국민주여성노조 철도 피에스디(PSD)지부와 전국철도지부가 지난달 13일 오후 대전역 앞에서 공동파업 투쟁대회를 열었다. PSD지부는 “회사가 지난해 11월까지 용역직원의 안전복 치수를 조사하는 등 직접고용(기간제 전환)을 약속해놓고 지난 3월 갑자기 신규채용 공고를 냈다. ‘생명·안전 업무’는 직접고용을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 만큼 발표시점과 무관하게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민주여성노조 철도PSD지부 제공
코레일 관계자는 이에 대해 “201명을 기간제로 직접 채용하는 걸 고려한 건 맞지만, 직접고용보다는 용역업체 관리자 등이 업무에 투입될 수 있는 용역 유지가 더 낫다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라며 “최종적으로는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층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게 하고 공정한 정규직 선발을 위해 정규직 신규채용 공고를 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들의 기간제 채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근무복 치수를 물어본 적이 있어서 오해가 생겼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코레일은 다만 지부와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레일 관계자는 “지난 3일 노조와의 협의를 통해 정부 지침 범위 내에서 경력 직원 채용 때 현장·직무 특성, 경력·자격 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채용제도 개선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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