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우도를 달리고 있는 렌터카. 현대자동차 제공
요즘 제주는 신록이 푸르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한라산은 온통 녹색의 향연을 뿜어내고 코발트빛 바다가 손짓합니다. 해안도로의 유명 카페나 관광지마다 관광객들로 넘쳐납니다. 지난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은 1400만명이 넘습니다. 안녕하세요, 제주도에 살며 제주도를 취재하는 전국팀 허호준입니다.
제주도 인구는 2013년 말 60만4670명에서 지난해 말 69만2032명으로 14.4% 증가했습니다. 같은 시기 자동차는 28만1031대에서 38만3659대로 36.5%나 늘었습니다. 자동차 보유 대수는 가구당 1.338대(전국 평균 1.053대)로 전국 1위입니다. 같은 기간 렌터카는 얼마나 늘었을까요? 63개 업체 1만6423대에서 지난해 말 128개 업체 3만2천대로 무려 100%가 늘었습니다. 렌터카에 의한 교통사고는 한해 500건이 넘고 있습니다.
인구와 관광객 증가에 가장 영향을 받는 이들은 제주도민입니다. 제주 도심지 교통난은 심각한 상태입니다. 현대성 제주도 교통항공국장은 “시 외곽 지역에서는 혼잡 상황을 느끼지 못하지만, 시내 주요 도로에서는 교통난으로 서울의 평균 속도보다 더 낮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지난달에만 관광객 115만명이 찾았고, 이 가운데 90만여명이 개별 관광객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렌터카를 이용해 제주 여행에 나섭니다.
저는 고등학생 딸과 드라이브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지난달 하순 제주 시내에서 함덕해수욕장으로 가던 딸이 차창 밖을 보며 ‘헐~’ 하고 말하더군요. “아빠. 왼쪽에도 ‘허’, 오른쪽에도 ‘허’, 앞에는 ‘호’네.” 제가 말했습니다. “제주도에는 ‘허’씨가 가장 많아.” 아시다시피 렌터카의 번호판에는 허, 호, 하 등을 붙입니다. 해수욕장 길가에도 대부분 렌터카가 주차돼 있었고요.
제주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교통정책 가운데 하나가 ‘렌터카 총량제(수급조절)’입니다. 제주도가 제주지역 차량 수용능력분석을 제주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용역 연구(2017년)한 결과, 이 상태로 계속 차가 늘어나면 차량 통행 속도가 2017년 시속 26.6㎞에서 2025년에는 11.8㎞로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입니다. 차고지 증명제와 대중교통 체제 개편 등의 정책도 함께 추진되고 있지요.
용역연구 결과를 보면, 도내 적정 렌터카 수는 2만5천대 정도입니다. 도는 렌터카 공급 과잉으로 인한 교통 문제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2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조성을 위한 특별법’을 개정해 렌터카 수급조절 권한을 이양받았습니다. 이 법에 따라 2020년 9월20일까지는 렌터카 신규 등록 및 증차를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더는 렌터카가 늘어나지 못하게 됐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지난해부터 진행된 제주도와 렌터카 업체들의 많은 협의 끝에 자율적으로 6월 말까지 3만2천대에서 2만5천대로 7천대를 줄이기로 했습니다. 도내 중소업체들은 모두 이에 동참했습니다. 도는 지난 29일부터 자율 감차를 하지 않은 차량에 대해 운행제한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운행제한 시행 이틀 전에 취소됐습니다.
대기업 렌터카 업체 제주영업소 5곳이 자율 감차를 하지 못하겠다며 법원에 ‘차량 운행제한 공고 처분 등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가처분신청을 냈는데,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들 업체는 “자유 경쟁 시대에 행정기관이 규제하는 것은 영업 자율권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처분의 효력으로 신청인들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롯데와 에이제이(AJ) 등 5곳이 보유한 렌터카는 모두 6085대나 됩니다. 제주도자동차대여사업조합은 “대기업들은 제주에서 렌터카뿐 아니라 호텔과 면세점, 골프장 등을 통해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제주관광의 최대 수혜자이면서 자신들의 돈벌이 과정에서 악화한 교통난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법원의 결정으로 자율 감차에 참여했던 업체들도 동요하고 있습니다. 현대성 국장은 “대기업은 감차하지 않고 감차한 중소업체들만 손해라는 인식이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본안 소송에서 제주도가 패소하면 감차에 동참한 중소업체들만 성수기에 수익이 줄어들게 되고, 자율 감차는 없었던 것으로 됩니다. 교통행정의 신뢰도 떨어질 듯합니다. 현재 자율 감차에 참여한 업체는 80여곳 2424대입니다.
허호준 전국1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