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여성·시민단체 회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최종 조사 결과 발표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과 검찰과거사위원회를 규탄하고 있다. 여성신문 제공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을 “검찰 스폰서 문화의 전형”으로 규정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검찰 인맥’을 수사하라고 촉구했지만, 법무부와 검찰은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 조사 자료 검토가 우선이라는 이유를 대지만, 전직 검찰총장까지 수사 대상으로 거론돼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6년 전 부실·봐주기 수사로 ‘김학의 3차 수사’를 초래한 검찰이 이번에도 ‘실기’할 경우, 국민적 비난은 물론 국회 심사를 앞둔 수사권 조정 논의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어서 고민이 깊다.
지난 29일 과거사위는 김 전 차관 말고도 윤씨의 ‘뒷배’가 된 검찰 고위 관계자들이 더 있다며 한상대 전 검찰총장,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박충근 전 춘천지검 차장검사를 지목했다. 과거사위는 2013년 윤씨에 대한 검찰의 봐주기 수사가 검찰 고위직에 대한 윤씨의 폭로를 막으려는 것은 아니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직 검찰총장 등의 비위 의혹을 전해 들은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법무부는 과거사위로부터 ‘수사 촉구’ 결정문을 받아 대검으로 송부했지만, 수사 개시 여부는 “대검이 결정할 일”이라며 뒤로 빠졌다. 지난 3월 과거사위가 김 전 차관과 박근혜 청와대 민정수석실 수사를 권고하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법무부 관계자는 “과거사위가 ‘수사 권고’를 한 게 아니어서 공식 입장을 밝히기 곤란하다”며 선을 그었다. 권고보다는 구속력이 낮은 ‘수사 촉구’를 했다는 취지다. 과거사위는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정작 과거사위를 출범시킨 법무부는 단어 뉘앙스 차이를 이유로 남의 일 대하듯 하는 셈이다.
법무부로부터 결정문을 넘겨받은 대검 역시 신중한 태도다. 30일 대검 관계자는 “자료가 넘어오면 검토 뒤 형사소송법에 따라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차관 사건을 맡은 검찰수사단(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은 자체 판단이 아닌 대검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김용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위원이 29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브리핑실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범죄 의혹과 과거 검·경 수사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과천/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검찰의 ‘저자세’는 전직 검찰총장 수사에 착수할 만큼 구체적 근거가 확보됐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검찰수사단은 지난 3월 과거사위의 김 전 차관 뇌물 혐의 수사 권고 때에도 ‘증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한 전 총장이 지난 3월 관련 보도를 한 언론사를 고소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해온 것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30일에는 윤 전 고검장이 과거사위 위원 2명과 대검 진상조사단 소속 검사 1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수사단은 과거사위가 부실·봐주기 수사로 판단한 2013년 검찰 수사팀과 당시 지휘라인 조사도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직 검찰총장까지 수사해야 한다는 부담과 불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불거진 의혹을 덮고 가기에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검찰의 ‘전전긍긍’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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