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경북지방경찰청 소속 신임 여경들이 ‘착한운전 마일리지 제도’를 홍보하기 위해 걸그룹 크레용팝의 노래 ‘빠빠빠’에 맞춰 헬멧을 쓰고 춤을 추는 영상. 경북지방경찰청 유튜브 갈무리.
지난 1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대림동 경찰관 폭행 사건’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 영상에는 경찰이 술 취한 남성을 체포하는 장면이 담겨 있는데, 영상 속 여성 경찰이 제압 과정에서 시민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이유로 ‘여성이어서 미숙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겁니다. 급기야 여성 경찰을 없애달라는 ‘여경 무용론’ 주장까지 나왔지요. 그러자 민갑룡 경찰청장은 21일 “(영상 속) 남경과 여경 모두 나무랄 데 없이 적절한 조치를 했다. 술이나 약물에 취한 사람을 현장에서 다루기 굉장히 어려운데, (현장 출동 경찰관들이) 자기 통제력을 유지하고 적법 절차에 따라 대응한 데 대해 경찰을 대표해 감사드린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번 논란을 지켜보면서 문득 2년 전 가을 서울 영등포에서 만났던 한 여성 경찰관이 떠올랐습니다. 이 여성 경찰관의 이름은 민인숙. 현재 계급은 경감입니다. 2년 전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에서 근무할 때 사람들은 그를 ‘대림동 다이하드 여경’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불리게 된 이유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알 수 있습니다.
‘대림동 다이하드 여경’으로 불린 민인숙 경감. 추격전 당시 한국방송(KBS) 뉴스 화면 갈무리.
2012년 8월 당시 경위 계급으로 대림3파출소에서 근무하던 민 경감은 지하철 7호선 대림역 12번 출구 앞에서 특별단속을 벌이다 한 만취 운전자를 발견했습니다. 당시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 0.108%. 심지어 그 운전자는 운전면허증이 없다며 다른 사람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댔습니다. 무면허 음주운전이었던 거죠. 그는 경찰이 차에서 내릴 것을 요구하자 갑자기 속력을 높였고, 민 경감은 운전석 손잡이에 매달린 채 15미터를 끌려가다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 왼쪽 무릎을 다쳤습니다. 그러나 다시 2.5㎞의 추격전 끝에 민 경감은 결국 운전자를 붙잡았습니다. (
▶관련 기사: ‘다이하드 여경’, 만취 차량에 매달려 추격전) 당시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은 민 경감은 한 인터뷰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범인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이 민 경감의 활약상을 보도하면서 ‘다이하드 여경’이라고 불렀고, 그는 일약 스타가 됐습니다.
그런데 7년이 지난 지금 ‘대림동 다이하드 여경’의 활약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앞서 말씀드린 ‘여경 무용론’과 같은 여성 혐오성 주장만 난무하게 됐습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그동안 페미니즘 운동이 활성화하면서 일부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되레 백래시(backlash: 반발·반격) 현상이 일어난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겁니다. 하지만 경찰이 이런 현상을 자초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경찰의 자초라니, 무슨 얘기냐고요. 최근 등장하는 ‘여경 무용론’에 꼭 함께 등장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바로 여성 경찰들이 걸그룹 댄스 등을 추는 경찰 홍보 영상입니다. 여성 경찰관들은 이런 영상이나 찍으면 되는데 뭐 하려고 세금을 들여서 그들을 경찰로 뽑느냐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는 영상들입니다.
2013년 7월 경북지방경찰청 소속 신임 여경들이 ‘착한운전 마일리지 제도’를 홍보하기 위해 걸그룹 크레용팝의 노래 ‘빠빠빠’에 맞춰 헬멧을 쓰고 춤을 추는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2014년 11월에는 대전지방경찰청 소속 여경들이 이른바 ‘4대 사회악’ 근절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지하철과 놀이동산에서 춤을 추는 영상을 공개했지요. 2015년 4월에는 보이스피싱 예방을 홍보하기 위해 한 생명보험사의 극장 광고를 패러디해 웨이브 댄스를 선보인 경북지방경찰청 여경의 홍보 영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사건 신고 독려, 피해 예방 안내 등을 시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취지로 제작됐다는 이 홍보 영상들은 당시 “4대 사회악 근절 위해서라면…걸그룹 댄스도 ‘OK’” “사투리에서 걸그룹 댄스까지…경찰 홍보 무한변신” 등의 뉴스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여경들이 걸그룹 댄스 등을 추는 경찰 홍보 영상들은 모두 2013~2015년 사이 집중적으로 제작됐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시기 여성 경찰들은 왜 본업인 치안 활동이 아니라 에스엔에스(SNS)용 홍보 동영상 출연에 동원된 걸까요. 당시 홍보 업무를 담당했던 경찰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2012~2013년에 부산지방경찰청의 에스엔에스 홍보가 화제가 되면서 지방경찰청들 간에 홍보 경쟁이 좀 있었죠. 경찰이 정부기관 중에 ‘뉴미디어계’라는 직제를 거의 처음 만들었던 것도 그렇고, 온라인 대응 부분에서 다른 곳보다 좀 선도적이었던 게 있어요. 에스엔에스 홍보나 이런 게 성과 평가에 들어간다, 안 들어간다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매년 평가는 받죠. ‘이달의 우수 사례’로 꼽히면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고.”
“예전에 한창 부산(지방경찰청)에서 홍보를 잘 했었잖아요. 계속 이슈가 되다 보니까 각 청마다 여경들이 홍보 영상을 제작하고, 그런 걸 많이 했었어요. 최근에는 그런 분위기가 좀 죽었지만….”
2012년 부산지방경찰청은 트위터 계정에다 기발하고 재치 넘치는 ‘스토리텔링’식 사건 설명을 담아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후 페이스북에서도 영화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등의 포스터를 패러디한 범죄 근절 캠페인 게시물이나 ‘철컹철컹’(수갑을 찬다는 뜻의 의성어) 등과 같이 누리꾼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로 경찰의 활약상을 홍보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부산경찰’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해 각 지방경찰청마다 시민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에스엔에스 홍보 활동이 활발해졌는데요. 2013년 2월 부산지방경찰청이 제작한 ‘귀요미송 여경’ 영상이 히트하면서 젊은 여성 경찰들이 걸그룹 댄스 등을 추는 ‘눈요기용’ 영상이 앞다퉈 제작됐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방경찰청 사이에 홍보 경쟁이 붙었고, 여기에 여성 경찰이 도구로 쓰인 겁니다.
경찰대학 졸업 및 임용식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경찰이 시민들에게 친숙한 존재로 자리잡기 위해 에스엔에스 소통을 늘려가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일선 경찰들의 노고와 범죄 예방을 위한 캠페인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움직임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성 경찰을 일종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걸그룹 댄스를 추는 여경’ 영상은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여성에 대한 경찰의 사고방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거죠. 여성 경찰은 다른 사람을 돌보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 반면 남성 경찰은 무언가를 지키는 강인한 이미지로 홍보해왔잖아요. 보통 언론에서도 여성 경찰은 ‘여경’이라고 부르지만, 남성 경찰을 ‘남경’이라고 표현하진 않아요. 경찰은 말하지 않아도 ’남성‘으로 표상되는 거죠. 여성을 성적 대상 또는 돌봄 대상으로만 여기는 한국 사회의 편견이 경찰의 홍보 영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던 거라고 봅니다. 실제 경찰이 생각하는 조직 내 여성의 역할도 그와 다르지 않고요. 경찰이 얼마나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인가요. 그 안에서도 성별에 따라 권위와 위계가 다시 나뉘었던 거죠. ‘대림동 경찰관 폭행 사건’과 관련한 논란도 그동안 경찰이 여러 차례 보여준 여성 경찰의 역할을 남성 누리꾼들이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 편견이 표출된 것이고요.”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더욱이 이러한 홍보영상은 여성 경찰들이 원해서 출연했던 것도 아닙니다. 실제 한 지방경찰청의 경우 2013년에 제작한 여경 홍보 영상에 대해 ‘경찰이 왜 본업인 치안 활동보다 홍보에 신경을 쓰냐’라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해당 영상을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일선 현장에서 근무하는 한 남성 경찰은 이에 대해 “이제 막 순경, 경장이 된 친구들이 직접 나서서 ‘이거(홍보 영상) 해오겠습니다’라고 했겠나. 진급에 유리할 것 같아 자진했던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 무렵 나온 영상들은 대부분 위에서 시키니까 출연했던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뒤늦게나마 ‘경찰의 에스엔에스 홍보가 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2∼3년 전부터 여성 경찰들이 출연하는 홍보 영상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2017년 10월에는 경찰개혁위원회 인권보호분과에서 성평등한 경찰을 위한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여성경찰을 과도하게 홍보에 활용하거나 통념에 기반한 성차별적 이미지를 강조해 경찰홍보에 활용하지 않을 것’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대중에 각인된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림동 경찰관 폭행 사건’을 둘러싸고 나오는 여경 무용론이 씁쓸한 이유입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