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왼쪽)와 지난달 초(오른쪽) 훼손된 중앙대 반성폭력·반성매매 모임 ‘반’의 대자보. 중앙대 대학원생 이아무개(27)씨 및 반 제공.
중앙대학교에서 학내 페미니즘 모임의 대자보가 수차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말 숙명여대, 성균관대에 이어 중앙대까지 대학 곳곳에 붙은 페미니즘 대자보가 잇따라 훼손되고 있다.
19일 중앙대 반성폭력·반성매매모임 ‘반’(이하 반)과 중앙대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4월 초부터 현재까지 중앙대 법학관 등에 부착된 대자보가 모두 3차례 훼손됐다. 지난달 5일과 9일엔 중앙대 100주년기념관 1층과 법학관 지하1층, 법학관 근처 흡연부스에 부착된 반의 대자보가 누군가에 의해 뜯겼다. 대자보엔 반의 출범 소식을 알리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달 9일과 13일, 16일에도 법학관 지하1층에 붙어있던 반의 출범 대자보도 찢어졌다. 훼손된 대자보를 목격한 중앙대 대학원생 이아무개(27)씨는 “법학관 지하1층에서 반 대자보가 찢어진 것을 봤다. 누가 대자보를 찢어 놓으면 얼마 뒤 누군가가 찢어진 종이에 반창고를 붙여놨고, 반창고가 붙은 종이를 또다시 누군가가 뜯어버리는 식이었다. 지속적으로 찢겨 종이가 너덜거리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반은 대자보 훼손이 학내 여성주의에 대한 ‘백래시’라고 비판했다. 반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학내에 여러 이슈에 대한 대자보가 붙어있는데 유독 페미니즘 관련 대자보만 훼손 대상이 된다. 강사법 관련 대자보는 반년이 넘게 붙어있는데 반의 대자보를 포함한 페미니즘 대자보는 한달을 넘긴 적이 없다”고며 “반의 대자보 훼손은 분명한 백래시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경찰에 신고해도 (훼손한 사람의) 신원 확인이 어려울 것 같아 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향후에는 대자보 부착 시 ‘훼손은 재물손괴죄에 해당한다’는 내용을 명시할 예정이다”며 “그 후에도 계속 문제가 발생한다면 훼손한 사람의 시시티브이(CCTV) 사진을 공개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대학 내 페미니즘 관련 대자보가 훼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는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를 규탄하는 대자보가 밤사이 뜯긴 채 발견됐다. ‘중앙대 영문과 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의 설명을 보면, 지난해 12월21일 중앙대 서울캠퍼스 법학관 지하1층에 붙어있던 ‘영문과 교수 성폭력 규탄 대자보’가 신원미상의 남녀에 의해 철거된 상태로 발견됐다. 비대위는 “다른 주제의 대자보는 그대로 놔두고 영문과 교수 성폭력이나 정치국제학과 단톡방 성폭력 같은 성폭력 고발 대자보만 골라 철거했다”며 “성폭력 사건을 은폐하려는 목적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본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 1월 비대위의 신고를 받은 서울 동작경찰서가 당시 사건의 수사에 나섰지만, 확보한 시시티브이 영상만으로는 신상 파악이 어려워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고 수사가 종결됐다.
중앙대 외에도 숙명여대나 성균관대 등 대학 곳곳에서 페미니즘 이슈와 관련한 대자보가 훼손되는 일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숙명여대에서는 일부 중학생들이 학내에 붙은 ‘탈코르셋’ 대자보에 해당 대자보를 조롱하는 낙서를 하기도 했다. 숙명여대 학과 탐방을 왔던 서울 경인중학교 학생들은 탈코르셋 대자보에 욕설과 함께 ‘너도 못 생겼다’ ‘가슴 A컵’ 등의 낙서를 했다. 이에 숙명여대 총학생회 등이 반발하며 사과를 요구했고 지난해 12월 초 경인중은 숙명여대에 학생들의 행위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의 입장문을 보냈다. 숙명여대 쪽이 이 사과를 거절하면서 사건은 종결됐다.
성균관대에서도 지난해 11월께 학내에 부착된 페미니즘 관련 대자보가 무더기로 철거된 바 있다. 성균관대 총여학생 재건을 위한 모임인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이하 성성어디가)의 설명을 보면, 지난해 11월 4일과 6일께 성성어디가에서 학내 게시판에 부착한 페미니즘·총여학생회 관련 대자보 20장이 무단으로 철거됐다. 대자보에는 온라인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여성 혐오 발언들이 담겨 있었다.
대학 내 페미니즘 관련 대자보가 지속적으로 ‘몸살’을 앓고는 것은, 여성주의와 학내 민주주의의 훼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대학 안에서 이뤄지는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이자 ‘백래시’가 나타날 징후라고도 볼 수 있다. 아울러 소수자의 목소리나 다른 이념·사상이 표출되는 공간이 훼손당한 것으로도 해석 가능하다”며 “대학은 일반 사회보다 민주적인 곳이어야 하기 때문에 대자보라는 다른 목소리를 표출하는 공간이 훼손되는 현상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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