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개봉된 서울 종로구 허리우드극장에서 영화가 끝난 뒤 부마항쟁 다큐멘터리 부분이 삭제된 채 검은 무지화면으로 상영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그 때 그 사람들> 첫날 극장표정…매회 매진 이어져 ‘10·26’ 사건을 왜곡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송사에 휘말려 법원의 부분삭제 결정이 내려진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 사람들>이 3일 개봉했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예술적 창작물’이냐 ‘창작을 빙자한 악의적인 음해’냐는 논란이 사회적 관심을 증폭시켜서인지 이날 오후 서울 종로3가 서울극장에는 매 회마다 표가 매진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삭제 결정이 내려진 영화 속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삽입된 부마항쟁 다큐멘터리와 김수환 추기경의 추모사,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 다큐멘터리 등 3분50초 분량은 알려진대로 까만 화면으로 처리됐다. 또 영화 첫 머리에 “이 영화는 실제사건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그러나 인물과 사건은 픽션입니다”라는 자막을 넣어 관객들이 ‘예술’과 ‘역사’를 혼동하지 않도록 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영화는 역사적 사건인 ‘10·26’과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들의 행적을 시간의 흐름을 좇아 그대로 따라간다. 각하(송재호)의 서산 헬기 순시와 궁정동 만찬. 김 부장(백윤식)은 만찬장에서 경호실장(정원중)의 안하무인격 태도에 비위가 상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그는 슬며시 방을 나와 오른팔 주 과장(한석규)과 민 대령을 호출하며 대통령 살해계획을 알린다. 그리고 ‘총격’…. 배경은 역사, 등장인물 언행은 상상에 의한 재창조 영화의 배경에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지만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재창조에 가깝다. 술과 여자와 노래에 취해 “저항쯤이야 탱크로 일만 명쯤 밀어버리면 된다”고 믿는 각하,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권력 질서, 그에 대한 맹종을 작가는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이 영화가 철저한 ‘블랙코미디’ 형식을 따르고 있어서인지, 영화 상영 내내 극장 안은 ‘웃음바다’를 이룬다. 반면 나이 든 관객들은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최윤석(29)씨는 “재미있는 영화다. 명예훼손이라니, 시대를 바라보는 역사의식이 부족한 코미디 영화라는 점이 오히려 안타깝다. 재판부에서 오버한 것 같다”며 “영화를 본 대다수의 관객들이 이것을 보고 ‘영화’와 ‘실제’를 혼동한다고 판단했다면 관객들의 수준을 철저하게 외면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대생 김은주(24)씨는 “군사독재 시절 권력층의 행태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였지만, 그날의 일이 영화 속 내용처럼 전개됐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며 “영화 내내 웃었지만 씁쓸함이 남는 영화였다”고 말했다, 그는 “‘10.26’ 사건의 진실을 알아봐야겠다”고 덧붙였다. 젊은층 “미국에선 현직 대통령도 다루는데”
중년층 “이런 영화 상영 자체가 잘못” 이준호(21)씨는 “미국에서는 현직 대통령을 소재로 한 <화씨9·11>도 버젓이 상영되는데, 과거의 다큐 장면을 삭제하도록 하다니 어이가 없다”며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실제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말했다. 반면 유신시대를 거친 세대는 불쾌한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영화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극장을 찾았다는 중년의 부부는 “우리에게 경제적 부를 가져다 준 사람의 죽음을 희화화했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쁘다”며 “젊은 사람들도 박 전 대통령의 경제발전에 대한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라고 밝힌 박아무개(52)씨는 “이런 영화를 상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본다”며 “젊은이들이 영화를 보며 웃을 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라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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