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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일본에서 ‘제주4·3’ 기억운동은 한반도 화합의 상징이죠”

등록 2019-05-05 20:17수정 2019-05-05 20:19

[짬] 재일본 4·3유족회 오광현 회장

일본 오사카에서 만난 오광현 재일본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사진 허호준 기자
일본 오사카에서 만난 오광현 재일본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사진 허호준 기자
“일본에서는 제주4·3으로 돌아가신 모든 분을 ‘희생자’로 위령해 왔습니다. 남과 북이 같은 생활공간에서 살아가는 재일동포 사회야말로 대립에서 화해로, 반목에서 화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제주 출신 재일동포 공동체가 공고하게 형성된 오사카에서 제주4·3을 기억하고 남기는 일은 일본사회에 뿌리를 내린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 통국사에서 열린 ‘재일본 제주4·3희생자위령제’에서 만난 오광현(63) 재일본4·3유족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 하원리 출신인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인근 마을 월평 출신인 어머니는 해방 직후 오사카로 건너갔다.

부모 모두 서귀포 출신…오사카 출생
고2때 김석범 ‘4·3 소설’ 읽고 ‘충격’
“제사 지내며 울던 부친 끝내 가족사 함구”
1982년 제주 방문 ‘3명 희생’ 사실 확인

88년 도쿄 40주년 추도식 때부터 ‘참가’
2000년 유족회 꾸려 작년 위령비도 세워
“후손 제주평화기행 등으로 뜻 이을 것”

재일동포 2세인 오 회장이 제주4·3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고교 2학년 때 우연히 소설가 김석범 선생의 <까마귀의 죽음>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4·3을 알게 됐어요. 깜짝 놀랐어요. ‘이게 뭔가. 소설이냐 사실이냐’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우선은 부모님의 고향 제주도에서 그런 참극이 있었다는 데 대해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을 재일동포 소설가가 썼다는 것을 알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4·3에 대해 전혀 몰랐거든요. ”

그러나 오 회장이 4·3에 관해 묻자 아버지는 “누구한테 4·3 이야기를 들었느냐”며 호통을 친 뒤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끝내 4·3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떴다. 오 회장은 “아버지는 4·3의 당사자였다. 네형제 중 세째인 아버지는 4·3 때 일본에 있어서 화를 면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둘째형의 제사를 지내면서 남몰래 울곤 하셨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둘째형과 사촌 2명이 4·3때 희생됐다는 사실을 오 회장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인 지난 1982년 처음으로 부모의 고향 제주도를 방문해서야 알게 됐다. 오사카에서 태어나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오 회장에게 작은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광현아, 한국에서 종교는 무엇을 믿든지 자유다. 하지만 4·3은 자유가 아니야.” 그때만 해도 제주에서는 4·3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던 때였다.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다. 오 회장은 “작은아버지의 말에 충격을 받아 4·3을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는 일 말고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고 했다.

오 회장이 본격적으로 4·3운동에 나선 것은 지난 88년 일본 도쿄에서 제주4·3 40주년 추도식에 참석할 때부터였다. 그는 그때 오사카에서 혼자 도쿄 추도식에 참석하러 갔다. 그로부터 10년 뒤 그는 제주 출신 재일동포들과 함께 98년 50주년 위령제를 처음으로 오사카에서 열었다.

“제주도에서 김윤수 심방(무당)을 초청해서 위령제를 지냈어요. 당시는 4·3을 몸소 경험한 재일동포 1세 어르신들이 많이 왔었습니다. 어머니도 갔었고요. 오사카에는 직·간접적으로 제주4·3 관련자들이 많아서 이 분들의 한을 풀어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굿을 하게 됐습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위령굿 현장에서 절하고 우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제주4·3 시기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도민은 1만여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밀항하다가 체포된 제주도민만 1만2천여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는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뒤섞여 있다. 총련과 민단으로 나뉘기도 했다. 일본에서 4·3을 언급하는 것이 제주보다 더 조심스러운 이유다.

오사카에 재일본제주4·3유족회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2000년 10월이다. 그 뒤 4·3 활동도 다양해졌다. 지난해 11월에는 제주 출신 재일동포와 일본의 지식인들이 뜻을 모아 오사카시 텐노지구 통국사에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처음으로 ‘제주4·3희생자 위령비’도 세웠다.

오 회장은 “위령비는 일본에서 4·3 기억의 이정표가 되고, 민단·총련·일본의 화합의 상징이 될 것이다. 위령비를 통해 조국의 하나됨을 기원하고, 세계에 평화의 메지를 전할 것이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최근 몇 년 사이 4·3을 경험한 재일동포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셨다”며 일본사회의 4·3 기억의 전승 대책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지난달 30일부터 3일까지 재일동포 3, 4세대와 일본 청년 등 20여명이 제주도를 방문해 4·3 관련 유적지를 찾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4·3의 의미를 되새기는 ‘재일 제주인 후손 4·3평화기행’도 그런 고민에서 나왔다.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일본에서의 4·3운동을 남북 화해와 통일 운동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다. “4·3 시기 많은 제주인들이 살기 위해 찾아온 오사카는 4·3과 일본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오사카에서 4·3의 기억과 전승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제주4·3은 남도에서 발신된 한반도 전체의 화해와 협동의 상징이 돼야 합니다.”

오사카/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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