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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9년 홍대 지킨 경비노동자…그의 마지막길 지켜준 학생들

등록 2019-05-03 17:18수정 2019-05-03 19:15

새벽 초소 가던 길 심근경색으로 숨져
2000년부터 24시간 2교대 근무
홍대 “외주업체 소속…학교와 무관”

노학연대 ‘모닥불’이 분향소 마련
“마지막까지 고생, 죄송하고 감사”
영정사진·박카스·추모글 수백개 놓여
유족 “남편, 학교에 애정 남달라”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에 마련된 경비 노동자 선아무개씨의 분향소에서 학생들이 추모 메시지를 쓰고 있다. 19년 동안 홍익대 경비 노동자로 일한 선씨는 지난 27일 새벽 출근하던 중 쓰러져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전국공공운수노조 페이스북 갈무리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에 마련된 경비 노동자 선아무개씨의 분향소에서 학생들이 추모 메시지를 쓰고 있다. 19년 동안 홍익대 경비 노동자로 일한 선씨는 지난 27일 새벽 출근하던 중 쓰러져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전국공공운수노조 페이스북 갈무리
지난달 27일 오전 6시40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학교 홍문관 1층 출입구 근처에서 이 학교 경비 노동자 선아무개(60)씨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른 새벽 출근해 일터인 중앙도서관 경비 초소로 가는 길이었다. 선씨는 학생의 신고로 오전 7시5분께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선씨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첫째 딸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오래도록 딸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선씨는 2000년께부터 19년 동안 경비 노동자로서 홍익대를 지켜왔다. 홍익대 중앙도서관 1층 입구에 있는 경비 초소에서 24시간씩 2교대 근무로 학생들의 안전을 지켰다. 오랫동안 이어온 2교대 근무 체제는 이달 5일부터 3교대 체제로 바뀔 예정이었다. 박진국 전국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홍익대분회장은 선씨에 대해 “경비가 학교 운동장을 청소하고 잔디를 깎고 교수들 이삿짐 나르는 데 ‘동원’되던 고된 시절부터 노조가 들어서고 그나마 처우가 나아진 현재까지 변함없이 학교를 지켜온 사람”이라고 돌아봤다.

선씨는 홍익대와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이었다고 한다. 선씨의 부인은 선씨가 졸업생 2명을 데리고 고기를 사 먹였던 생전 모습을 되짚었다. “19년 동안 결근 한 번 없었어요. 집에 오면 ‘요즘 취업이 잘 안 되어서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공부만 한다’며 안쓰러워 했습니다.”

19년 동안 변함없이 학교를 지켰지만 선씨는 끝내 홍익대 구성원이 될 수는 없었다. 선씨는 홍익대와 용역계약을 맺은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박 분회장은 “홍익대는 케이티(KT)텔레캅과, 케이티텔레갑은 다시 ㄱ외주업체와 계약을 맺었고 선씨는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였다”고 말했다. 선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소속은 더욱 분명해졌다. ㄱ외주업체 관계자는 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근로복지공단 주무 관청에서 산업재해로 인정되면 회사 차원에서 근로자에게 산재 혜택을 드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홍익대 관제팀 관계자는 “우리는 케이티텔레캅이랑 계약한 거다. (산재 처리 등에 대해서는) 업체를 통해 확인하라”라며 답을 피했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에 마련된 경비 노동자 선아무개씨의 분향소에서 학생들이 추모 메시지를 쓰고 있다. 19년 동안 홍익대 경비노동자로 일한 선씨는 지난 27일 새벽 출근하던 중 쓰러져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전국공공운수노조 페이스북 갈무리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에 마련된 경비 노동자 선아무개씨의 분향소에서 학생들이 추모 메시지를 쓰고 있다. 19년 동안 홍익대 경비노동자로 일한 선씨는 지난 27일 새벽 출근하던 중 쓰러져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전국공공운수노조 페이스북 갈무리
하지만 학생들에게 선씨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인사를 받아주던, 어엿한 홍익대 구성원이었다. 선씨의 부음을 들은 홍익대 학생들이 노조 관계자들과 함께 학교에 작은 분향소를 차려 그의 마지막을 배웅한 까닭이다. 경비·청소 용역 노동자와 학생 간 연대 활동을 해온 학내 모임인 ‘모닥불’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3일 동안 선씨가 쓰러졌던 홍문관 인근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분향소에는 선씨의 영정 사진과 조화, 박카스 4병이 놓였다. 김민석 모닥불 운영위원장은 “노동자와 학생들이 연대해서 활동하는 공동체인 만큼 학내 노동자의 힘든 상황에 대해 알리고 함께 대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분향소를 차렸다”고 말했다. 박 분회장도 “높은 교직원들은 먼발치에서 쳐다보다 갈 뿐이어서 서러웠는데 학생들은 진심이 담긴 추모 글을 많이 써줬다”고 말했다.

실제 분향소 벽면에는 학생과 동료들이 남긴 추모 포스트잇 쪽지 746개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쪽지에는 “항상 밝게 웃으면서 인사 나눠주셔서, 저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히 쉬세요”, “요즘 중도(중앙도서관)에 많이 있는데 덕분에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저씨와 같이 근무했던 시간들 잊지 않을게요. 그곳에선 건강히 지내셔야 해요”, “19년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곳으로 가세요”, “항상 거기 계셨던 분, 편히 쉬세요. 감사했습니다”, “마지막까지 고생하셔서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홍익대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좋은 나라 가서 딸 만나고 행복한 날들 보내게”와 같은 내용이 담겼다.

유가족은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선씨의 부인은 “학생들이 작은딸한테 와서 보고 가라면서 분향소를 차려둔 사진을 보내왔다”며 “그래서 가서 보고 왔다.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선씨 부인은 이어 “학생들이 장례식장에 와서도 어찌나 울던지, 내가 그래서 ‘못난 아줌마 말이지만 부지런히 공부해서 성공하라’고 이야기해줬다”고 말했다. 유가족의 인사에 김 위원장은 “빈소에 갔을 때도 유가족분들이 신경 써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그런데 분향소에 학생들이 찾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더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2일 분향소 한쪽 벽면에 학생들이 빼곡하게 붙인 추모 포스트잇.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2일 분향소 한쪽 벽면에 학생들이 빼곡하게 붙인 추모 포스트잇.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모닥불은 학내 경비·청소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동자와 연대해 활동하는 정기적 학내 연대체로 지난 3월 출범했다. 최근에는 홍익대 무인경비시스템 도입과 관련해 경비 인력 감축을 저지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모닥불은 “선씨의 죽음을 계기로 학내 경비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업무 환경을 알리고, 노동자가 학내 구성원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누리도록 하기 위한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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