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활동가와 강제동원 소송 피해자 측 변호인이 지난해 12월4일 한국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협의 요청서를 전달하고자 도쿄 지요다구의 신일철주금 본사를 방문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일본 나루히토 왕세자가 새 일왕으로 즉위한 ‘레이와’
시대 첫날,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 소유 한국 내 주식을 현금화해 압류하는 최종 절차에 들어갔다.
1일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및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단은 “신일철주금이 소유한 피엔아르(PNR)사 주식 19만4794주(액면가 기준 9억7400만원) 매각명령신청을 대구지법 포항지원에, 후지코시가 소유한 대성나찌유압공업 주식 7만6500주(액면가 기준 7억6500만원) 매각명령신청을 울산지법에 접수했다”고 밝혔다. 두 회사의 주식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에 따라 지난 3월 압류된 상태였다. 이번 신청은 대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액을 받아내기 위해 압류한 주식을 매각해 현금으로 바꿔달라는 것이다.
법원은 매각의 적절성 등을 판단하기 위한 심문 절차를 마친 뒤 매각 결정을 내려야 한다. 포항지원 쪽은 “대법원 판결까지 났기 때문에 매각 명령 결정은 (바로) 날 것”이라고 했다. 한국 법원이 매각명령서를 신일철주금 등에 송달하는 기간을 고려하면 현금화에는 3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본격적인 매각 절차가 시작됐지만 일본 정부와 보조를 맞추고 있는 신일철주금 등의 반발을 고려하면 최종 매각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비상장주식에 대한 감정, 매각공고 과정에서 신일철주금 등이 이의신청을 제기하면 또다시 재판을 통해 매각의 적법성을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신일철주금은 이미 자산 압류 절차 당시 “일본 정부와 논의해 대응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19년 전인 2000년 5월1일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근로자의 날’을 맞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처음 제기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고령의 피해자들이 현금화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는 생전에 일본 기업이 사과와 배상에 나서기를 촉구하는 의미가 더 크다”며 “우리 정부가 이제는 적극적으로 나서 해법을 마련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양 교수는 “매각명령신청서 접수가 새 일왕이 즉위하는 날 이뤄진 점 때문에 일본이 굉장히 반발할 것”이라며 “한-일 관계도 더는 이대로 갈 수는 없으므로 정부가 역할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사법부와 피해자들에게만 맡겨놓을 상황은 이미 넘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일본 아소 다로 부총리는 주식매각 등 강제집행이 이뤄질 경우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과 송금 정지 등 보복 조처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이날 주일한국대사관에 “일-한 청구권 협정에 따른 (분쟁해결) 합의에 (한국이) 응하지 않는 가운데 원고가 자산 매각 움직임을 진행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했다고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전했다. 주한일본대사관도 한국 외교부를 상대로 같은 내용의 항의를 했다.
대리인단은 “실제 현금화까지는 3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만큼 강제동원 가해 기업은 지금이라도 노예와 같은 강제노동을 시켰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기를 희망한다”며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장예지 박민희 기자,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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