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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탈시설 요구하는 장애인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농성하는 이유

등록 2019-04-18 14:09수정 2019-04-18 14:22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12일부터 ‘탈시설 농성’ 시작
17일 오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제2기 서울시 장애인 인권증진 기본계획 전면 수정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오연서 기자
17일 오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제2기 서울시 장애인 인권증진 기본계획 전면 수정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오연서 기자
#1.

교통사고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아 전동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추경진(51)씨는 2001년 가족의 등쌀에 못 이겨 충북 음성군의 한 장애인 거주 시설에 입소했다. 2016년 퇴소하기 전까지 추씨의 15년 시설 생활은 그야말로 ‘세상과의 단절’이었다. 추씨는 “처음 시설에 갔을 때 가장 작은 방은 2~3평 남짓이었다. 방에 많게는 21명까지 들어가 다닥다닥 붙어서 잤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사육을 당한다는 느낌도 들었다”고 말했다. 외출도 자유롭지 않았다. 추씨는 가족 중 누군가 차를 가지고 와야만 시설로부터 외출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병원을 가는 게 아니면 가족 없이 외출하는 것을 시설이 승인해주지 않았다.

사생활도 당연히 보장되지 않았다. 추씨는 “목욕을 일주일에 두 번 정도밖에 못 할 때도 있었다”며 “그것도 다른 장애인들과 같이 단체로 목욕을 해서 불편했다”고 말했다. 시설을 찾아오는 외부인들은 추씨를 보자마자 손을 잡고 “어떻게 하다 다치셨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추씨는 자신이 “동정받아 마땅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시설에서의 생활엔 일단 자유가 없습니다. 친구들을 사귀거나 일을 하지도 못하고, 개인 생활도 없습니다. 이렇게 살다가 시설에서 죽는 건 너무 비극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6년 추씨가 탈시설을 결심한 이유다.

#2.

뇌병변 장애 1급 김혜진(33)씨에게 2014년 4월은 다시 태어난 날과도 같다. 당시 충남 연기군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퇴소한 뒤 김씨가 만난 세상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저는 태어난 지 100일이 조금 지나서 아동 양육 시설에 있다가 21살에 장애인 거주시설로 갔습니다. 그로부터 6년 뒤 탈시설을 했는데 그 뒤 생활은 시설에서의 생활과 180도 달랐습니다. 시설에서 저는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씻는 것도 모두 시설이 정한 시간에 해야만 했어요. 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처럼 사는 줄 알았어요.”

탈시설 뒤 김씨는 그동안 자신의 삶이 ‘감옥’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2014년 탈시설한 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야학도 다니고, 2015년 4월에는 서울시에서 중증장애인 인턴제를 통해 일도 했습니다.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을 통해 월급도 받고. 이게 사람다운 삶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런데 이 감옥 같은 시설 생활을 45년이나 하게 만드는 게 서울시의 장애인 인권증진 계획이라고요? 박원순 시장님께 시설에서 생활해본 뒤에도 이 계획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탈시설’을 주장하는 장애인들이 서울시의 장애인 탈시설 자립 계획이 미흡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장차연)는 17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제2기 서울시 장애인 인권증진 기본계획 전면 수정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연대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수십년을 살다가 탈시설한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시설은 감옥’이라고 목놓아 외치고 있다”며 “서울시의 장애인 인권증진 기본계획은 45년 중증장애인 감옥 수감 계획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서울시가 공개한 ‘제2기 서울시 장애인 인권증진 기본계획’을 보면, 향후 5년 동안 서울시에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로부터 연 60명(총 300명)의 탈시설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장자연은 “현재 서울시 산하에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총 45개, 2657명(2017년 말 기준)의 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을 고려했을 때, 서울시의 계획대로라면 완전한 탈시설까지는 45년이 걸린다. 나머지 2천여명의 장애인들은 감옥 같은 거주시설에 방치하겠다는 뜻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12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장차연은 우선 “1년 내 300명, 5년 내 1500명 탈시설을 목표로 10년 내 모든 장애인이 장애인 거주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서울시에 요구했다.

이들은 탈시설 이후 생활 지원도 문제라고 밝혔다. 장차연의 설명을 보면, 서울시는 1차 탈시설 5개년 계획에서 2017년에 1인당 정착금을 1500만원으로 확대할 예정이었으나, 2018년 현재 1200만원으로 4년째 동결수준이라고 한다. 장차연은 “1인당 정착 금액을 확대하고, 대기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설 거주 장애인의 인원에 맞는 탈시설정착금 책정이 필요하다”며 “1인당 2천만원을 적정수준으로 제안한다”고 주장했다. 김필순 노들장애인자립센터 활동가는 “탈시설 장애인이 자립생활에 성공하기 위한 세 조건에는 돈과 활동보조서비스, 주거가 있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이어 “자립생활 지원을 위해 만난 시설 거주 장애인 중에는 가족의 강요로 시설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 만 65살을 앞둔 고령 시설 거주인이어서 상대적으로 서비스 수준이 낮은 요양시설에 머물 수밖에 없는 분도 계셨다. 이처럼 시설에서 살긴 싫지만 자신을 지원해줄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시설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장애인 탈시설 지원 예산이 증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시설 거주자들의 시설 퇴소 뒤 거주 지원 마련에 집중해 탈시설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 관계자는 “매년 시설 거주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탈시설 희망 욕구 조사 결과를 반영해 탈시설 인원 목표치를 300명으로 잡은 것”이라며 “희망 의사만으로는 탈시설 정책이 성공할 수 없다. 자립생활주택이나 지원주택 등 거주 지원 체계를 적극적으로 마련해 시설 거주 장애인들이 탈시설 뒤 자립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이번 계획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에 서울시는 정신장애인 자립 생활 주택을 올해 처음으로 28개 짓고, 2023년까지 70개까지 확대해 현재 85개인 장애인 자립생활 주택도 100개로 늘릴 방침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시설 종사 노동자들을 지역사회 인력으로 흡수하는 방안, 시설 폐쇄 뒤 건물 이용 방법 등도 탈시설화 정책의 일환으로 계획에 담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2013년 전국에서 가장 먼저 장애인 탈시설화 계획을 수립한 결과 애초 목표치보다 4명이 많은 604명이 장애인 거주시설 밖으로 탈시설해 가정을 비롯해 거주시설 체험홈 등에 자리 잡았다고 추진 성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장애인 인권단체 쪽은 “실질적으로 탈시설이라고 보기 어려운 거주시설 체험홈과 공동생활가정(그룹홈)으로 입주한 경우도 탈시설로 집계했다”며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면 2013년부터 2017년 서울시에서 실질적으로 탈시설한 인원은 255명으로 탈시설 목표치(600명)의 42%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쪽은 “그동안 시설에서 자립을 준비하는 과정도 탈시설화 과정의 하나라고 보고 체험홈도 탈시설 인원으로 잡았지만, 2차 계획에서는 그 인원을 제외했다. 하지만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은 시설에서 나가 지역사회에서 소규모로 생활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탈시설 인원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폐지 시행을 위한 장애인단체 토론회’에서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및 탈시설 기본방향’ 초안을 공개하고 장애인의 탈시설 및 자립을 위한 3단계 계획을 밝혔다. 정부는 1단계에서 탈시설한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2022년까지 자립 체험 주택 등 주거 인프라를 확보하고, 2단계인 2022년부터는 장애인 거주시설의 추가 입소를 제한하기로 했다. 이어서 3단계에서는 2026년부터는 탈시설을 제도화해 장애인 거주시설을 중증장애인 지원 기관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장애인들의 일상을 도와주는 활동 지원 서비스도 퇴소 후 6개월간 한 달에 20시간씩 추가로 지원할 방침이다.

오연서 권지담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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