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수사단은 17일 건설업자 윤중천씨를 사기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2013년 7월 10일 성접대 의혹으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는 윤씨. 연합뉴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검찰수사단(단장 여환섭 검사장)이 17일 이 사건 핵심 피의자 중 한명인 건설업자 윤중천씨를 전격적으로 체포하면서, 2013년 이 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한 뒤 6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윤씨 입이 열릴지에 검찰 안팎의 관심이 쏠린다.
윤씨는 이 사건을 재조사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과의 몇차례 면담에서 ‘김학의 전 차관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 진술을 근거로 대규모 수사팀이 꾸려지고 재수사가 시작됐지만, 돈을 줬다는 날짜와 장소, 액수 등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아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특히 이권과 송사가 얽힌 건설업을 해온 윤씨가 건넨 돈의 대가성 등 주요 혐의를 모두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사단은 공소시효 문제와 불충분한 증거라는 ‘이중 난제’를 풀어야 하는 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단은 소환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윤씨를 검찰 조사실 의자에 앉히는 고강도 압박 작전에 나섰다.
이날 윤씨의 체포영장에 적힌 혐의는 과거 검찰 수사나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조사한 내용과는 별개다. 수사의 본류인 성범죄나 뇌물과 관련한 혐의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수사 초기 김 전 차관 관련 혐의로 윤씨를 체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던 수사단이 윤씨의 ‘개인 비리’를 발판 삼아 수사 활로를 찾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 특수부 등에서 피의자를 압박하기 위해 활용하는 이른바 ‘별건 수사’라는 것이다. 수사단도 별건 수사 논란을 의식한 듯 이날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김학의 전 차관 사건 및 관련 사건’을 수사 대상으로 권고했다. 윤중천 사건을 김 전 차관 관련 사건으로 보고 리뷰를 해왔다. ‘관련 사건’ 범위에서 수사 단서를 포착하고 참고인 조사를 통해 범죄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본류’를 캐기 위한 엉뚱한 ‘별건 수사’가 아니라 본류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또 다른 범죄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번에 윤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건설·건축 관련한 사기, 인허가 관련 알선수재 등이다. 알선수재 관련 혐의에는 과거 ‘검찰 수사 청탁’과 관련한 내용도 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수사단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사기는 액수가 5억원 이상일 때 3년 이상의 징역형만을 규정하고 있다. 또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 혐의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이 가능하다. 윤씨는 2013년 검찰의 1차 수사 때도 구속기소됐는데, 당시도 사안의 본류인 성범죄와 뇌물죄가 아닌 사기, 경매방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가 적용됐다.
수사단이 선택한 ‘별건 수사’라는 우회로를 통한 고강도 압박이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날 아침 서울 양재동 자신의 집 근처에서 체포된 윤씨는 최근까지도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의 전화취재에 응하며 성범죄 혐의 등을 적극 부인해왔다. 또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는 “내가 입을 열면 여럿 피곤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 관계자는 “윤씨가 수천만원을 줬다고는 하지만 진상조사단에서 구체적 내용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 계좌추적을 통한 단서 포착도 쉽지 않아 보인다”며 “일단 개인 비리로 구속까지 한 뒤 뇌물공여 등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사기 혐의 정도로 윤씨의 입을 열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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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천 조사받는 서울 동부지검 앞에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