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물류 소속 화물기사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가 무더기로 계약 해지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단체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확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농협중앙회 계열사인 농협물류 안성센터에서 신선 식품 운송을 담당하는 화물기사들은 지난달 31일 회사로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노조 쪽 설명을 보면, 농협물류 안성센터 노사는 지난달 중순께부터 운송료와 재계약 문제를 두고 교섭을 시작해 의견 접근을 이뤘고, 3월 안에 재계약을 완료할 예정이었다. 화물기사들은 농협물류와 매년 연말 계약을 갱신하는데, 이번에는 3월로 계약 갱신이 미뤄졌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회사는 노조 쪽에 ‘단체행동을 금한다’는 내용의 확약서를 내밀었다. 노조가 서명을 거부하자 이튿날인 31일 조합원 전원에 대한 계약을 해지했다. 회사가 제시한 확약서에는 ‘계약 기간 동안 운송 관련 단체에 가입하지 않을 것을 확약하고, 단체행동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며, 이를 어기면 농협물류가 계약 해지를 해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날 현재 농협물류 안성센터와 계약한 화물기사 140명 가운데 71명이 전국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농협물류 안성분회에 조합원으로 가입한 상태다.
특히 농협물류는 계약해지 이후에도 노조를 상대로 소송을 내고 직장 폐쇄를 하는 등 압박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물류가 이달 2일 노조에 낸 업무방해금지 및 명예훼손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보면, 회사는 노조 쪽에 지난달 31일 하루치 파업에 대한 손실보전금으로 50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요구한 것으로 나온다. 노조 쪽은 이와 관련해 “노조 가입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당한 당일인 3월31일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서 센터 내 신선 제품 물류 운송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회사가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라며 청구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농협물류는 지난 4일 안성 물류센터 내 물량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센터를 폐쇄하는 조처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농협물류 쪽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조합원 10명이 지난 5일 안성분회 노조를 탈퇴했다.
농협물류가 화물기사들에게 요구했다는 확약서(왼쪽 사진)와 농협물류 쪽이 노조에 낸 가처분신청서(오른쪽 사진). 전국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제공.
노조에 가입했다가 계약 해지된 조합원들은 ‘노조할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농협물류 안성분회 노조는 이달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화물기사는 새벽 1시부터 늦으면 오후 5시까지 일하는데 손에 들어오는 돈은 160만원 안팎이다. 월급은 10년 동안 인상되지 않았다.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려면 노조가 절실해 지난 2월부터 화물연대의 문을 두드렸는데, 그걸 빌미로 생업을 잃었다”고 호소했다. 농협물류 안성분회 관계자도 “회사에서 단체행동을 하지 말라며 내민 확약서는 불안한 노동 상황에 시달리는 우리들에겐 ‘신체포기 각서’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회사는 조합원을 상대로 회유와 겁박을 계속해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안성분회 관계자는 “농협물류는 지난해 10월께 평택분회 노동자들에게도 계약해지를 통보했고 수십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조합원에 대한 계약해지와 손해배상 청구는 농협물류가 화물기사들에게 가하는 압박 패턴”이라고 주장했다.
농협물류는 사실관계가 와전됐다며 조합원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농협물류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확약서를 요구한 배경에 대해 “화물기사들이 회사가 제시한 계약안에 거부 의사를 표해 대체인력을 구해야 했다. 이전 계약이 종료되지 않은 채 대체인력을 구하면 문제가 돼, 기존 화물기사들과 계약 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확약서를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계약 해지가 아닌 종료”라고 강조했다. 확약서에 담긴 단체행동 금지 요구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평택 파업 때 회사가 입은 손실이 굉장히 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직장 폐쇄를 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을 두고는 “안성센터는 농산물이 집결되는 허브센터다. 여기서 화물기사들이 빠지니 농산물 유통이 안 되고 농민 피해가 극심해 물류를 부득이하게 옮긴 것이다. 손해배상도 물류 운송이 안 돼 손해가 생겨 취한 어쩔 수 없는 조처”라고 말했다.
하지만 농협물류의 이런 계약 해지는 부당 노동행위의 성격이 짙다는 주장이 나온다. 법무법인 원곡의 최정규 변호사는 “화물기사는 형식상으로는 개인 사업자이지만 실제로 하는 노동의 성격을 보면 사실상 회사에 종속되어 있는 노동자”라며 “이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해석해야, 이런 부당한 대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이어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벌어진 노조 활동을 빌미로 한 계약 해지는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있고 적극적으로는 해고로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공인노무사인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조직부장도 “특수고용 노동자여도 노동자라고 주장할 수 있는 판례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화물기사들처럼 노동법 등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구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화물지입기사나 택배·퀵서비스 기사를 비롯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는 사용자에게 종속된 ‘노동자’이지만, 형식적으로는 고용계약을 맺지 않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고용·산재보험 가입, 노조 가입과 같은 노동권을 누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계속 있어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17년 5월 “특수고용 노동자도 ‘노조할 권리’ 를 포함한 노동3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별도 법률을 제정하거나 노조법상 ‘근로자’에 특수고용 노동자가 포함되도록 하라”고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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