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3월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2차 공판에 출석하러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사법농단 사태의 실무 책임자로 지목돼 재판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검찰측 증거에 대거 부동의해 100명이 넘는 법관들이 증인석에 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임 전 차장의 ‘상관’인 대법관의 진술은 동의하고 하급자였던 법관들 진술은 부동의하는 방식으로 법정에 부를 증인을 선별하는 재판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 전 차장의 공판에서는 증인 신청 여부를 둘러싼 임 전 차장과 검찰의 공방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임 전 차장은 권순일 대법관과 민일영 전 대법관의 검찰 진술에 대해 “(증거) 동의를 검토하고 있어 증인신문까진 필요 없다”고 밝혔다. 권 대법관은 2015년 6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관한 내부 검토 문건을 유해용 당시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에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민 전 대법관도 당시 원세훈 전 원장의 국정원 댓글사건 상고심 주심으로서 청와대 요구사항을 반영해 판결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반면 그외 법관에 대한 증인 신문은 임 전 차장이 직접 그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임 전 차장은 당시 행정처에 의해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된 김동진 부장판사의 증인 신청을 재판부에 요청하며 “서증조사만 하면 김동진 부장판사가 아무 징계사유 없이 징계를 받은 것처럼 검찰이 강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뒤,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에 오르고 대법원 중징계를 받은 바 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임 전 차장의 증인신청 전략을 두고 “본인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하게 여겨지는 증거라면 부동의하는 것이 맞다. 이에 더해 자신보다 높은 상관이 증인으로 나올 경우 오히려 불리한 증언이 나와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한편 이날 증인으로 소환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심의관을 지낸 박찬익 전 심의관과 김종복 전 심의관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박 전 심의관은 10일 출석이 가능하다는 의사를 전해 왔지만 임 전 차장 쪽 변호인의 일정을 고려해 이달 24일로 미뤄졌다. 9일 신문이 예정됐던 조인영 전 기획조정심의관도 불출석 의사를 밝혀왔다. 검찰은 “임 전 차장에 대한 공소사실 중 박근혜 행정부 관련 사안에 대해 증언해줄 수 있는 예상 증인 수만 57명이다. 그중 절반이 넘는 34명은 정식 증인 채택 전에는 출석 날짜를 제시하는 것을 곤란해 한다”며 재판부에 신속한 증인 채택을 요청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